매일 읽자
어릴 때부터 종이신문이 친숙했다. 새벽에 늘 신문이 배달됐다. 아버지는 늘 출근 전에 거실 바닥에 신문을 펼쳐놓고 읽으셨다. 구부정하게 반쯤 엎드려 읽는 자세가 불편하지 않으신가 생각이 들었다. 또 어머니는 사무실에서 남는 신문이라며 퇴근길에 석간신문을 들고 들어오셨다. 한 달이면 폐지가 한 묶음 나와 그것을 폐지 수거함에 버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읽는 신문을 나도 읽어보려고 몇 차례 시도 했던 기억은 나는데, 한자도 너무 많고 정치면 기사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었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친숙함은 남아 있었다.
대학교 다닐 때 즈음 시사 상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자기 분야만 잘 알고, 사회에는 무지한) 공대생은 되고 싶지 않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도 주변 사람들은 네이트 뉴스 같은 인터넷 기사들을 많이 봤지만, 나는 인터넷 기사는 손이 가지 않았다. 자극적인 사건·사고 뉴스보다는 상식을 다양하게 채우는 방향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당시에 느낀 점이 있는데, 신문을 읽지 않던 사람이 신문을 처음 읽기 시작하고 일주일쯤 지나면 신문에서 읽었던 것 중 하나 정도는 일상 대화에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제 신문에서 읽었는데 말이야.. " 하고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화제에 알맞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다. 한 달쯤 읽으면 읽지 않는 사람들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것을 아는 듯 티를 낼 수 있다.
부모님도 정년퇴직 하시고, 본가에 신문 구독은 끊겼지만, 다행히 신문을 읽을 환경은 계속 있었다. 수험 공부를 할 때 신림동 식당에서 혼밥 하면서 신문을 봤다. 그리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쉴 때 휴게실에 내려와 신문을 봤다. 식당, 독서실 모두 신문 매체를 다양하게 구독하고 있었기에 여러 매체를 비교하면서 볼 기회도 있었다.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도 사무실로 늘 여러 신문이 배달되어 편하게 볼 수 있었고, 회사를 쉬고 있는 지금 종이 신문을 내 돈 주고 구독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신문을 읽는 것이 아침 루틴 중 하나다.
같이 신문을 읽는 친구와 종이신문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이야기하며 정리해 본 내 생각은 이렇다.
먼저, 엄선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같은 매체에서 작성된 기사들이 모두 지면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편집국의 판단을 거쳐서 어떤 기사를 싣고 어떤 기사를 어디에 배치할지 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기사는 인터넷 기사로만 남고 지면에서는 배제된다. 즉, 종이신문은 한 번 걸러진 기사라 그 퀄리티가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다음으로, 주제를 편식하지 않을 수 있다. 아마 인터넷 기사로 뉴스를 찾아보면 순위에 오른 기사, 관심 있는 분야 기사만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신문 하나가 마치 책 한 권처럼 정치, 사회, 국제, 경제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 분야의 기사만 읽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접하게 된다. 물론 모든 지면을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읽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페이지는 다 넘기면서 중요 헤드라인 정도는 계속 체크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로 숙제처럼 느껴져서 보다 성실히 읽게 되는 장점도 있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면 매일 빼먹지 않고 직접 뉴스 포털에 들어가야 한다. 하루 빼먹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일이다. 그런데, 종이신문은 놀랍게도 매일 아침에 문 앞에 숙제를 가져다준다. 바빠서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펼쳐지지 않은 깨끗한 신문이 남아 있는데, 이걸 버리는 것이 마음이 영 불편하다. 숙제 같은 압박감도 있지만, 반대로 매일매일 숙제를 해치우는 은근한 재미도 있다.
다만, 돈이 든다. 일간지 기준 보통 월 2만 원이다. 그리고 집에서 구독하면 매체를 다양하게 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일간지는 어떤 형태로든 기사를 통해 신문사의 입장을 드러낸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신문사의 성향마다 사건을 조망하는 방법, 분량과 지면 위치, 톤, 보여주는 정보가 모두 다르고, 저마다의 의도가 숨어 있다. 하나의 매체만 읽으면 그 매체의 성향에 매몰되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점이 우려되어 나름 진보 성향의 일간지와 보수 성향의 일간지를 하나씩 구독하고 있는데, 돈이 두 배로 든다. 그리고, 2개도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종이신문 읽기는 나름 학생 때부터 가져온, 그리고 앞으로도 쭉 가져가고 싶은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