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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주 May 27. 2021

첫 애를 낳아 키우는 부부는싸울 수밖에 없다.

'엄마 노릇'은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결혼한 부부가 이혼을 언급할 정도로 크게 위기를 겪는 시기는 보통, 첫째를 낳고 시작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자녀 때문에 상담을 오신 어머님도, 이혼 때문에 상담을 오신 아버님도, 가족상담을 요청하시는 부모님들도, 배우자에게 마음이 크게 상했던 역사적 기원을 훑다 보면, 첫째 낳고 크게 싸웠다는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냥 어떤 부부와 이야기를 나눠봐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이렇게 첫째를 낳고 키우는 일 년 전후로, 부부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서로 감정적으로도 많이 상해서, 두고두고 오래가는 마음의 앙금을 쌓아두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렇게 첫째를 낳고 키우면서 부부가 싸우는 건, 여러 각도에서 아주 당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첫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각자,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로서 살아본 적 없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누군가의 자녀였고, 아내나 남편 역할까지는 해봤지만, 부모 역할을 해보는 건 처음이지요? 자신의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이래저래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실천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부모님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떠올리며 흉내를 내볼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의 아이의 부모 역할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부모 역할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제,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의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찬찬히 살펴볼게요. (아, 벌써,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단언컨대, 이 시기는요, 평생 동안 살아오면서 그 어떤 시기보다 체력이 부치고 시간이 부족하며, 심리적으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그냥,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바닥을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이 때는, 몸이 아프고 체력이 부쳐서 당장 드러누워 쉬고 싶어도, 해야 하는 일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자신이 없고,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감, 섭섭함 등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겪기도 합니다. 잠깐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나 배우러 다니거나 다른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겨보고 싶지만, 이런 결정을 내렸다가는 대체로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해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로, '첫 아이의 부모 역할'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갓 태어난 아이는, 기저귀를 완전히 뗄 때까지, 사실은 그 이후까지도 일거리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들어냅니다. 갓난아이가 만들어내는 일 꺼리는, 처음 당해보는 사람한테는 거의 재난에 가까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냥, 아주 많습니다.

깜깜한 엄마 배속에 있다가, 낮과 밤이 있는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일단 딱히 밤이라고 자지 않고, 낮이라고 깨어있지 않습니다. 밤에는 자고 낮에는 깨어있어야 하는 규칙을 익힐 때까지, 보통 1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지나면, 비로소 아기는 밤에 잠들면 깨지 않고 일곱 시간 이상을 자는, 소위 통잠을 자는 게 가능해진다고 하고, 이게 바로 그 100일의 기적입니다. 바꿔 말하면, 아기는 태어나서 석 달 정도가 지나기 전까지는, 밤낮이 없다는 뜻이고요, 부모를 밤에 자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 뿐 만이 아닙니다. 갓난아기는 소화기관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부모가 깨어있는 시간을 더욱 바쁘게 합니다. 아기가 소화를 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매우 한정적이고 그나마도 한 번 먹었을 때 소화할 수 양이 매우 적습니다. 아기가 먹고 소화할 수 있는 젖(분유)의 양이요, 처음에는 40ml에서 60ml로 늘고, 차츰 80ml로 늘어납니다. 80ml가 얼마나 얼마나 적은 양이냐면요, 믹스 커피 한 봉지를 탈 때, 적정 물 분량이 120ml입니다. 두 모금 마시면 끝나는 그 분량이요. 그런데 우리 아기들은 처음에, 조만큼을 먹는 거예요. 조만큼을 먹고도 트림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혼자 못해서, 저거라도 먹고 나면 꼭 등을 토닥토닥해서 트림도 시켜줘야 합니다. 만약, 조금 욕심부려서 적정량보다 더 먹으면 토할 수가 있어서, 억지로 막 더 먹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렇게 적게 먹으면, 양이 적은 만큼, 소화가 빨라서, 먹고 돌아서면 또 먹어야 합니다. 160~200ml 정도는 먹어줘야, 젖(분유)을 먹이는 시간 간격이 4시간 정도로 늘어납니다. 미음부터 시작하는 이유식을 시작하는 건 8개월 정도부터 구요, 이유식을 시작하면 부모님은 할 일이 더 늘어납니다.

게다가 마냥 누워있는 아이는, 소근육도 발달이 덜 된 상태로 태어나서,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 대소변을 봅니다. 기저귀가 계속 나옵니다. 소근육이 발달하는 중이라 계속 침을 흘립니다. 먹는 동안에는 계속 흘리고요, 콧물도 자주 납니다. 빨래가 계속 나옵니다. 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온 방을 다 쓸고 다니면서 옷을 더럽힙니다. 뭘 자꾸 만지고 떨어뜨리고 흘리고 소소하게 사고를 칩니다. 계속해서 빨래와 청소해야 하는 일을 만들어 냅니다.

참고로, 아이들은요, 서너 살이 될 때까지도, 화장실에 같이 가서 뒤처리를 해줘야 합니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대체로 부주의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청소년이나 어른들에 비해서 더 쉽게 더 자주 옷을 더럽히고 어른들보다 옷을 더 자주 갈아입습니다. 대여섯 살이 되어도 혼자서 깨끗하게 씻는 건 어렵기 때문에, 씻을 때마다 들어가서 씻겨주거나 잘 씻는지 봐줘야 합니다. 정말, 일이라고 하는 게 끝도 없죠.


각설하고 다시 갓난 아이로 시기로 돌아 갈게요. 이러다 보니, 이 갓난아이를 돌봐야 하는 어른, 그러니까 부모는, 출산 직후부터 세 달 동안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고, 거의 일 년 동안은 아이를 돌보는데 본인의 시간을 아주 많이 할애해야 합니다. 특히, 백일 전의 갓난아이를 돌봐야 하는 동안에는 '자기만의 시간'을 거의 포기해야 합니다.


이 '자기만의 시간'이라는 거요, 사실 별거 아닌 것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당연하게 하는 세수, 양치, 머리 감기, 로션 바르기, 화장실에서 볼일 보기, 커피 마시기, 잠들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영화보기,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 거의 3개월 정도는, 위에 적어 놓은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는 많은 엄마들은, 자신이 원래 하고 있던 무엇을 하지 못하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다 문득, 커피 한 잔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갑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완전히 바뀌어버린 현실이, 감당할 수 없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뭐, 주변 사람들이 괜히 미워지고 막 그럽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 만삭일 때 임산부는 배가 너무 무겁고, 이쁜 아이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아이를 빨리 낳고 싶어 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어른들께서는 '배속에 있을 때가 그나마 좋을 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맞아요. 아무리 배가 무겁고, 심지어 임신중독증이 있어도요, 아이는 배속에 있을 때가, 갓 태어났을 때보다는 많은 면에서 더 나을지도요.


중간 정리를 좀 해보면요, 그러니까, 첫 애를 낳고 키우는 부모는, 잘하지도 못 하는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하는데, 그 일이라고 하는 게 무자비할 정도로 많고요, 완전히 지친 날에도, 너무너무 하기 싫은 날에도, 부모 노릇을 그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축하도 해주고 응원, 격려, 위로도 해줍니다. 하지만, 이 주변 분들이 뭔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지적도 하고요, 이래저래 이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관심을 보이면서 훈수도 둡니다.

만약,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내향인들은, 첫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시간이 거의 지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외향인들은, 아기나 배우자 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가 없어서, 이 또한 괴롭다고 합니다.


그냥, 글씨만 읽는데도, 숨 막히기 힘들지 않나요?


그래서, 이미 이 시기를 겪었던, 또는 지금  시기를 겪고 있는 분들이, 이전의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고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건, 심지어 억울해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그냥,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파괴됐잖아요. 참, 별거 아닌 소박한 일상조차도요.


혹자는, 첫 애 낳고 키우는 거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을 비아냥대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애를 낳았어?" 


각오는, 다들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무자비한 현실 경험 앞에서는 각오고 준비고 나발이고 전부 부질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듣고 배워서 준비를 하는 것과 실제 경험을 하는 건 완전 다르잖아요. 영화도 3D보다는 4D가 훨씬 실감 나지만, 4D보다 내가 겪는 현실은 실감의 차원이 다르지요. 그냥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얼마나 그 시간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어려운 시간인지 비로소 체감하게 되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 시기를 겪는 부부가, 첫 애를 키우는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해서 불만스러워하는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예전에는 당연하게 누리던 생활을 더 이상을 누리지 못하는 것과 연결돼 있습니다. 만약에요, 부부 둘 중 한 명이라도, 예전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고 하면, 구조적으로 다른 한 명이 뒷감당을 더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부부 중 한 명이 “힘들어”라고 하면요,

다른 한 명이 “나도 힘들어”라고 대꾸를 하게 되고요,

이런 말을 서로 주고받은 부부는, 상대방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나머지 한 명은, "그럼 쉬겠다는 거? 나더러 일을 더 하라는 거?"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게 맞지요. 애를 둘이 같이 봐야 하는 데, 한 명이 쉬겠다고 하면, 그 한 명이 쉬는 동안, 다른 한 명한테 다 하라는 거죠, 뭐. 그런 생각도 없이 자기도 좀 쉬겠다고 하는 건, 너무 무심하고 어리석은 태도가 되겠고요.


거기에다, 플러스 알파로, 첫 애를 키우기 시작하면, 양가의 부모님들의 관심이(간섭이) 부쩍 심해집니다. 도와주시려고 하는 걸 모르지 않지만, 선의로 시작된 도움(관심/간섭)이, 많은 경우, 여러 사람의 관계 문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첫 아이를 낳고 키웠던 그 어느 때인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다면, 어느 순간 '나만 너무 힘든 건가, 내가 부모로서 너무 부족한 사람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면, 안심하세요. 우리 모두 그렇게 부모가 되는 첫 관문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만약, 그즈음, 또는 그 이후 언젠가, '나는 부모가 되기엔 별로인가?' 또는 '나는 나쁜 배우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님께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사람인 것 같습니다, 라고 전문가로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안 해보신 분들을 거의 못 만나 봤거든요. 만약, "나는 왜 하필 저런 배우자를 만났을까?" 싶어서 괴롭다면, 당신에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 건 배우자의 탓도 있겠지만, 상황 자체가 매우 열악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다, 내일 쓸 에너지까지 끌어다가 허덕허덕 살아가는 시기가 딱 이 때거든요.


아무리 준비를 다부지게 잘한다고 해도요, 직접 생활하면서 겪는 건 생각이나 간접경험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 잘 못해내고, 잘 못 견디고,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고, 나도 참 싫고, 아이도 밉고, 쟤도 밉고, 부모까지 미워지는 그 시기의 복잡한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제 막 출산을 하신 어머님들은, 거의 대부분 호르몬 변화로 극심한 심경의 변화를 겪습니다. 임산부의 80% 이상이 산후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경험을 겪으면서, 골격이 출산 전으로 회복되는 데까지 3년 정도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엄마들이, 사실 정상이 아닌, 건강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저 많은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아이를, 밤낮으로 돌보는 거예요. 본인이 부적절한 엄마라는, 소홀한 아내라는, 나쁜 딸이라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끼면서. 

그냥, 이것만 으르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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