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주 May 29. 2021

아이와 '놀아주지' 마세요.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활동이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어린 자녀를 돌보고 계시는 보호자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당부입니다.

부디, 아이들이랑 놀아주지 마세요. 아이들이랑은 "같이 노는" 거예요. 둘이 같이 노는데, 한 사람은 놀아주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놀이가 아닙니다. 아이들도, 부모가 '놀아 주는'걸 알면, 놀이를 순수하게 즐길 수 없습니다. 이런 건 엄밀하게 말하면, '놀이'가 될 수 없습니다. 둘이 같이 노는데, 적어도 부모님은 그다지 재미가 없지 않나요? 의무로 놀아주는 거라면요. 놀이의 목표는 쓸데가 없고,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놀아 주는' 것은, 아이를 위한다는 목적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딱히 재미가 없지요. 


아이와 '놀아 주지' 마시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놀이가 될 수 있도록 해봅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아이와 함께, 청소를 놀이처럼, 빨래 개고 정리하는 걸 놀이처럼, 음식 만들고 차리는 걸 놀이처럼 해보시라는 겁니다. 쉽지 않지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건 적어도 '놀아 주는' 것보다 백배 낫고요, 각 잡고 “노는 것” 보다도 낫습니다.



이런 말을 했을 때,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맞는 말인 건 알겠는데, 듣기만 해도 너무 힘들다."


청소를, 설거지를, 빨래를 놀이처럼 하는 게, 정말 아주 어려운 일일까요? 공부를, 상 차리기를 재밌게 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힘든 일일까요?



이건 제가 쓰는 방법인데,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밥을 차릴 때,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둡니다. 아이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이제 너희들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반찬통의 뚜껑을 따자!"


안 오면, 그냥 둡니다. 대답하고 식탁으로 오면, 반겨줍니다. 오늘은 몇 개나 되는지 이제 막 배운 수 세기를 해보자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한 개, 두 개"이러면서 뚜껑을 열어서 한 곳에 포개 둡니다. 이 장면이 상상이 되시나요? 서툰 손으로 반찬통을 열면서, 입으로 오물오물 숫자를 세는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그냥 괜히 귀여워서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딱히 놀이가 아니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고, 뚜껑이 다 벗겨진 반찬통을 보고는 뿌듯해합니다.


"엄마, 오늘은 내가 세 개 열었어!"


그렇게, 오늘 한 번 더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밥을 다 먹고 치울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반찬 통 뚜껑을 덮자! 그리고 반찬통 테트리스를 시작 하자!"

이러고는 테트리스 BGM을 입으로 소리 냅니다. 아이들이 테트리스 배경음악을 따라 하며 자뭇 진지하게 반찬통 뚜껑을 덮고, 냉장고에 차 곡차고 반찬통을 넣습니다. 제가 까먹고 BGM을 안 불러 주면, "테트리스 소리"라고 요구도 합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반찬통을 다 넣고 나면 "이제, 없나?" 하며 아쉬워할 때도 있습니다. 


뭐, 물론 매번 재밌어하지 않고, 어떤 날은 하기 싫다고 쿨 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놀이라고 매일 재밌지 않고, 원래 일이라고 하는 게 그다지 재밌게 할 만한 게 아니잖아요. 이만하면, 그럭저럭 재밌게 놀이하는 것처럼 상 치우기를 같이 하는 느낌이 나면 그만이지요, 뭐.



일상이 놀이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드리기 위해, 한 번 더 여섯 살 어린이들의 예를 좀 들어볼게요. 아파트 재활용을 목요일에 하는데, 아이들에게 한 봉지씩 들게 하고 저녁 먹고 어둑할 때 같이 나갑니다. 재활용을 버리러 가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정말 너무너무 즐거워합니다. 사실, 아이들이 들어주는 몫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병, 종이, 캔 따위를 "엄마, 이건 어디에 버려?" 물어가면서 한 개씩 던져 넣고는 의기양양해합니다. "박스는 납작하게 접에서 희딱 던져볼까?" 했더니, 박스를 던질 때마다 "희딱"이라는 말을 따라 하면서, 별 일 아닌데도 깔깔 웃습니다. 이렇게 몇 번 같이 재활용을 버리러 갔더니, 이제는 재활용하는 목요일을 기다릴 정도가 됐고, 날씨가 추워지니 "우리는 추위에 지지 않아." 이러면서 재활용이 든 봉지가 세차게 날릴 정도로 바람이 불어도 꺅꺅 대면서 더 신나 합니다.


아이들이랑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가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혹자는 이러더군요.


“조금만 더 커봐. 귀찮다고 안 할 거야.”


참, 맥이 빠집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들이 좀 더 커서 귀찮아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마냥 힘들여하지 않고, 재밌게 '놀이'로 해 보는 경험을 해봤다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어쩌면, 아이들이 그냥 처음 하는 거라 신기해서 재밌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쓰레기를 분류하고 버리는 행위를 진짜 재밌어하고 뿌듯해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도, 자기가 재밌으려고 부모 시간을 뺏는다고 느끼는 것보다, 원래는 부모님이 하던 일에 뭔가 자기가 도움을 주고, 그 와중에 낄낄 대고 웃는 게 더 기쁘지 않을까요?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길에도, 아이들은 한껏 의기양양해져서


"엄마 혼자 하는 거보다 낫지?"

"우리가 날씨를 이겼다!"


이 말을 몇 번씩 하고, 다음 날도 하고, 심지어 다른 식구들한테는 재활용하지 말라고도 하더라고요. 이쯤 되면, 재활용도 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의 자신감의 일부가 되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뭐, 물론 그 혹자분의 말씀처럼, 아이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귀찮아하여서 하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뭐가 됐든, 마라도, 언제라도 재밌게 해 봤으면 됐죠.




그리고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일상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활동을 놀이처럼 했을 때의 좋은 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일상을 한 번 돌아볼게요.

일상이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가 있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놀이와 공부 또는 일이 너무 분리돼 있으면, 놀고 싶을 땐 공부와 일이 정말 하기 싫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놀이처럼 대할 수 있으면, 피곤해도 공부나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면서 재충전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너무 좋겠지요?


무엇보다 일과 놀이가 너무 분리되면, 공부나 일을 하면서 재미가 느껴지면 왠지 어색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하면서 느끼는 재미를 축소해서 받아들이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공부가 재밌... 네? 이게 말이 돼?"

"설마 '일'이 재밌을 리가 없어."


그렇습니다. 놀려고 한 활동이 딱히 재미가 없을 때가 있고,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냥 놀이는 그런 거지요.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활동이지만, 재밌으면 그만인 활동.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게 더 재밌을 때가 많고, 그보다는 여럿이 같이 할 때가 더 즐겁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그런 활동이요.


그러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아이와 '놀아 주지'는 마세요. 같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이 둘인데,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딱히 재미가 없으면, 그건 더 이상 놀이일 수 없습니다. 아이가 부모가 자신과 '놀아 주는'걸 느낀다면, 아이는 자신을 위해 '놀아 주는' 부모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요? 아니, 어떻게 느껴야 할까요? 생각을 깊이 하면, '설마, 아이가 부모를 자신을 위해 놀이로까지 희생봉사를 해주는 대상으로 인지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만 아찔해집니다. 그러니, 아이 입장에서도 부모를 위한 행동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세요. 부모를 위한 행동을 부모님과 같이 즐겁게 해 본 기억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혹시라도,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없을 때면, 그냥 아이를 심심하게 두셔도 됩니다. 사실, 어린이들은 심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즐겁고 의미 있고,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까? 그냥 멀뚱멀뚱 있는 시간이 진짜 필요합니다. 요즘엔 '불멍', '물멍' 이라는 활동이 유행하기도 하잖아요. 아이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머리를 식힐 시간.



만약, 정말 여유가 있어서, 아이와 함께 놀 수 있을 때는, 신나게 같이 노세요. 같이 노는 어린이랑 신나게. 놀이가 뭐 별거 있나요? 둘이 하면, 둘 다 재밌으면 됐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으면 더 좋은 거죠.



작가의 이전글 첫 애를 낳아 키우는 부부는싸울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