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옳은 말을 해도, 자녀는 기분 나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은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부모가 옳은 말을 하는데, 자녀가 불쾌하고 삐딱한 반응을 보이는 건, 잘못된 걸까요?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나는 누가 틀린 말을 해야지만 기분이 나빠지는지. 누가 옳은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당연한 건지.
사실, 누군가 옳은 말을 해도 내 기분은 나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닌 틀린 말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잔소리를 해줘도, 자녀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죠 뭐. 형식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그냥 기분이 나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닌 말로, 사실도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칭찬을 해주면, 그냥 기분이 좋기도 하잖아요. 우리 애가 (객관적으로는) 그 정도는 아는데, 누가 좋게 봐주면, 그게 또 기분이 좋기도 하고요.
부모로서 할 말을 자녀에게 했는데, 자녀가 불쾌한 내색을 하면, 필요한 말을 한다고 생각한 입장에서는, 같이 기분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근데
"엄마가 말하는데 짜증을 내?"
"아빠가 못 할 말 했어?"
"내 말이 틀렸어?"
부모가 이렇게 말하면, 부모-자식 간 싸움이 커질 것 같네요.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부모가 훈계나 잔소리를 하는데, 아이가 "제게 꼭 필요한 말이네요.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면, 왠지 소름 끼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냥, 내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아도, 자녀의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이미 감정이 상해있는 서로에게, 더 나쁜 말들을 얹지 말아 보자고요.
관계 갈등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잘잘못을 따지는 걸 우선하면, 좀 더 사실에 근접한 주장을 하는 사람, 더 옳은 말을 하는 사람,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낼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더 옳은 사람과 더 틀린 사람을 구분 짓게 되는데, 더 틀린 사람은, 결국 사실관계를 따지는 싸움에서 패배자가 될 거예요. 그런데, 패배자가 되면, 관계 회복 같은 거 무슨 상관일까요? 그러니까, 잘잘못을 따져서 더 틀린 사람을 색출하려다,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어떤 관계, 어떤 싸움, 어떤 과정에는 누가 더 옳은 말을 하는지, 누가 틀린 주장을 하는지, 누가 더 상황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구분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감정이 더 상하고 관계는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느라 만난 관계에서는 '옳고 그름', '잘잘못'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친교가 더 중요한' 관계에서는 '좋고 나쁜' 게, '옳고 그름'이나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전자는 '공적 관계', 후자는 '사적 관계'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같이 활동을 할 때, 공사 구분만 잘해도, 일도 더 잘할 수 있고
대인관계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직장동료나 조별과제를 위해 만난 팀원은 '일'로 만난 사람이고, 가족과 친구, 연인은 친교가 주 목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니, 직장동료나 상사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일은 해야 합니다. 더럽고 치사해도 말이죠. 반대로 내 보기에 가족이 잘못된 행동을 해서 조언을 하거나 지적을 할 때, 상대가 기분이 상해버리면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더 옳게 행동을 하고 말을 잘해도, 상대방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어리숙하게 말을 해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둘 사이가 나빠지지요.
그러니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 중에서 뭐가 더 중요한 관계인지, '공'과 '사'를 잘 따져보세요. 부모-자녀, 형제, 자매, 남매, 친구, 연인 관계는 '옳고 그름' 보다, '좋고 나쁨'이 더 중요한 사적 관계입니다. 일도 잘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면. 더럽고 치사하고 구차하더라도 말이죠. 서로 생각과 욕구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러니 자녀를 혼내더라도,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따지다가, 아이의 감정이 너무 많이 상하는 수준까지 가기 전에, 감정도 살펴주세요. 그리고 부모님이 아주 훌륭하고, 좋은 걸 가르쳐준다고 해도, 아이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