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효주 May 25. 2021

가정 내 역할의 변화를 수용하는 속도의 차이

부부관계

일상에서 만나온 많은 맞벌이 부부, 상담에서 만난 맞벌이 부부, 심지어 TV에서 본 맞벌이 부부를 봐도, 부부 싸움을 하는 공통된 이유를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바깥일로 지친 상태에서 집안일에도 치일 때 서로에게 미운 감정이 생기고, 싸움도 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싸움을 하는 세세한 이유는 다 제각각이고,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고 싸우는 방식이나 결과는 각자 사정대로 진행되지만, 어쩐지 요즘 부부들이 싸우는 여러 이유 중에,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게 그냥 너무 지치고 힘든 것'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 아내의 불만과 서러움은, 똑같이 맞벌이를 하는데도 남편보다 자신이 집안일을 더 해야 하는 데서 오고, 남편의 억울함과 불만은, 자신은 자신이 봐왔던 자신의 아버지보다, 또는 다른 집 남편보다 집안일을 특별히 더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더 많이 하는데도 아내의 불평과 요구를 계속 들어야 하는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집이나 이런 비슷한 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난 후로, 부부상담을 할 때, 부부 각자에게 "아내 분은 남편분 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게, 때로는 부당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남편분은 보통의 남편 또는 자신의 아버지와 비교해도 자신이 딱히 집안일을 더 하는 것처럼 느끼실 때가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해 드려 봤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아내분들은, 남편이 집안일에 대해서, 왜 자신의 아버지와 비교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더 정확하게는,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은, 자기가 알고 있는 다른 집 남편보다 딱히 더 집안일을 더 하는 건 아니라고 딱 잘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편분들은, 집안일을 분담하는 점에 있어서, 아무리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은 남편'인 자신과 '집안일에 익숙한 아내'가 어째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지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워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납득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현재의 시대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여기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여자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고,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보장된 역사가 짧다는 점에 대해 미처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또는, 경제적인 이유가 매우 크긴 하겠지만, 이미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그래도 이전에 비해서는 점차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흐름에 따라 같이 변화해야 할 것 같다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다양한 현장에서,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핑크색 계열을 선택할 거라 기대하고 당연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이렇게 성에 따라 색을 구분하는 건 부당할 수 있다는 인식도 퍼져가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남자아이가 핑크색 티셔츠를 입으면 뭐 어때. 예쁘면 그만이지. 자기 취향인데.'라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아들이 핑크색 티셔츠를 고르겠다고 하면, 선 듯 사주지는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는 걸 체감하고 있고, 시대를 따라 나도 이미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게 더 옳은 것처럼 생각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나는 부모님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 내 커리어도 잘 쌓고, 내 인생도 챙길 거야."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집에 청소가 안 돼 있으면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짜증을 내며 청소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나는 그래도 아빠처럼 살진 않을 거야. 아빠가 우리한테 한 것처럼 아이들을 대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자신의 아내에게 더 나은 배우자라고 여기고 살면서도, 집이 더러우면, "집 꼴이 이게 뭐야. 청소도 안 하나." 싶어질 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에서, 개인차가 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마다, 머리가 움직이는 속도와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도 참 다른 것 같습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 나의 배우자를 이해하고 싶고, 싸움을 적게 하고 싶다면, 나의 배우자가 나와 같은 동시대를 살고는 있지만, 각자의 입장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한 번쯤은 곰곰이 헤아려 주었으면 싶습니다. 그리고 가치관이 격변하는 혼란스러운, 어떤 행동을 해도 정답이 없는 것 같은 이 시기를 살아내는 게, 때로는 매우 곤혹스러울 수 있다는 걸 서로 공감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