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옳은 말도, 꽁한 마음이 풀려야 귀에들어온다.
아이들이 아무리 말을 잘 들어도, 부모가 시키는 모든 걸 한 번에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지 말라고 했던 걸 또 하고, 실수를 하고, 심지어 십수 번을 가르치고 나서 이제는 그만하겠지 싶어도, 우리 아이들이 또 할 때도 있지요. 어떻게든 아이를 이해하고, 설명을 여러 번 반복을 하고, 방법을 바꿔가며 가르쳐봐도 아이가 문제가 되는 행동을 또 반복하면, '혼을 내서라도' 가르쳐야 하는 게 부모 노릇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훈육'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 모두 싫어하는 일이지만, 부모가 자녀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의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훈육을 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훈육의 기본 원칙은, '행동은 제한하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마냥 행동에 대해서 지적만 해도 안 되고, 행동 문제를 지적하고 교정하려 하지 않은 채로 달래주기만 해도 안 됩니다. 두 가지를 모두 다 해줘야 합니다.
행동을 제한한다는 건, (1) 하지 말았어야 할, 그래서 앞으로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2)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3)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까지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요약해서 다시 말하면, (1) 문제적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적 (2)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 (3) 문제적 행동을 대체할 방법이나 행동을 교육하는 것이 훈육에서 행동을 제한하는 것의 기본 세트입니다. 아마, 여기까지 읽기만 해도, "아니, 그냥 혼날 짓을 못하게 하고, 뭐가 문제인지 말만 해주면 되지, 뭐가 이리 복잡해" 싶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훈육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해주셔야 합니다. 훈육을 하면서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은, 아이가 그래도 (4) 그 행동을 왜 하려고 했는지 이유를 물어봐주고 (5)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고 (6) 행동을 제한당하고 혼이 나서 속상해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부터 (3)까지를 일단 하고, 추가로 (4), (5), (6)도 해줘야, 제대로 된 '훈육'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잘못된 행동을 한 우리 아이들에게 그 행동은 하지 말라고 정확하게 알려주면서, 그 마음까지 헤아려 줘야 한 다니, '훈육'을 제대로 한다는 거, 아무리 봐도 절대 쉽지 않겠죠? 어쩌면, '세상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그 마음을 헤아리라니.. 이게 뭔 소린지?' 싶을 거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뭐 전문가도 아니고, 대충 할래" 싶은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부모교육을 하는 제 입장에서도, 훈육을 한다고 매번 (1)부터 (6)까지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부모-자녀 관계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든 좀 더 나은 방식으로 '훈육'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여기까지 글을 읽고, 그래도 '제대로 된 훈육'을 해보고 싶은, 또는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분들을 위해, 한 번 이런 장면을 가정해 보려고 합니다.
핸드폰을 한 시간만 쓰겠다고 약속한 아이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계속 핸드폰을 하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부모님이, 그걸 그만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아이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짜증을 내고 '엄마는 뭐 이런 거까지 뭐라고 하냐!' 또는 '아빠가 너무해!' 이러면서 부모님을 원망을 하는 거예요.
아이고.. 상황이 이쯤 되면, 일단 기분이 나쁘고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겠죠. 그래도, 우리는 '훈육'을 제대로 하려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행동을 제한하면서 마음을 알아줘야겠죠. 이렇게요. (1) 약속을 어기고 핸드폰을 오래 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고 (2) 약속을 어기는 건 신뢰를 깨버리는 일인 데다가, 잘못을 지적했을 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면 우리의 관계가 나빠지기 때문에 (3)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고, 잘못을 했으면 시정을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4) 핸드폰을 하다가 중간에 끊으면 아쉬웠겠다고 (5) 재밌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야 나쁜 게 아닌데도 (6) 재밌게 하던 걸 중간에 끊어야 해서 아쉬웠는데, 혼나기까지 해서 더 속상한 아이의 마음을 알아줘야 하겠습니다.
위에 (1)부터 (6)까지, 제가 쓰면서도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차분하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아이에게 '훈육'을 실천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실까요? 혹시, 계십니까?
아마, "이게 어따대고 성질이야!", "네가 약속을 어겼잖아!!!", "원래 한 시간만 하기로 했잖아. 벌써 삼십 분도 더 지났어!" 하면서 같이, 또는 아이보다 더 크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거 같습니다. 그래요. 잘못을 먼저 한 아이가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 같이 성질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훈육이고 나발이고가 뭔 상관이겠어요. 아이가 저 따우로 행동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참아가면서 "네가 약속을 어겼잖아"라고, 아이가 약속을 어겼다는 걸 지적해주면 다행이죠. 흥분한 와중에도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옳은 행동' 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흥분을 해도 저 어린아이와 같이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혹시라도 막말을 한다면 그건 더 이상 훈육이 아니라 아이와 같이 싸움을 하는 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모가 아이에게 '어른'으로 위치를 잡아주려면, 기분이 상해도 한 템포 쉬고 같이 싸우는 것만은 참아야겠죠. 아무리 그래도 아이와 같은 수준에서 싸우는 건 '옳지 않은 행동' 이니까요.
참, '어른 노릇' 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저는 바로 위에 적은 내용을 통해, '적반하장으로 소리 지르는 아이 때문에 노여워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노여운 와중에도 좋은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노여운 마음을 참아야 하는, '어른 노릇 하기 힘든 마음'을 알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싸우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설명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이글에서 전달해드리고 싶은 '훈육'의 기본 방침입니다. 마음은 헤아리되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제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과정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헤아려주면, 뾰족해진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그러면 내 마음을 알아준 상대가 하는 말이 조언이든 행동에 대한 지적이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기보다는 그래도 들어볼 마음이 생기거든요. 이것도 인지상정이죠.
사실, 사람이 그렇더라고요.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왠지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잘 못 된 행동이라는 걸 아는데도 옳지 않은 행동을 계속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원래 '머리'와 '마음'은 그래요. 각자 자유의지가 있는데 '머리'가 하자는 걸 '마음'이 방해를 하기도 해요. 이건, 참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머리'가 하자는 걸 '마음'이 방해하는 건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죠. 특히 옳은 일을 해야 할 때는요.
어른 노릇을 한다는 건, '마음'이 뭐라 하건 '머리'가 하자는 대로 '바람직하게 행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거예요. 그래서 나에게는 자연스럽지가 않은 거기도 할 거예요. 그래도 뭐 어쩐대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부모는 '어른'으로 있어줘야겠죠.
이래저래 훈육은 정말 어려운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