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쉰들러 리스트>의 애몬 괴트에 대해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쉰들러 리스트>의 애몬 괴트(랄프 파인즈).
애몬 괴트는 독일군 장교입니다. 유태인을 수용소에 가두고, 그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죠. 그는 어떤 목적도 없이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유태인을 그냥 죽이기도 하고, 언덕 위의 숙소에서 라이플을 포로한테 겨누고 사냥하듯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살인이 일상이고, 유희인 거죠. 숙소에서 하우스 키퍼이자 섹스 파트너인 유태인 여자한테 무자비한 폭행을 휘두르기도 하죠. 때리는 이유가 뭐냐고 여자가 물으면 그런 걸 질문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라고 답해줍니다.
한 번은 수용소를 시찰하다가 독일군과 유태인 여자가 논쟁하는 걸 보게 됩니다. 논쟁하는 게 무엇 때문인지 묻죠. 유태인 여자는 건축가였는데 현재 짓고 건물의 기초에 커다란 하자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시공하면 결국 붕괴될 거라고 전문가의 견해를 밝힙니다. 그녀의 주장을 들은 애몬 괴트는 옆에 있던 부관한테 명령합니다.
“쏴!”
부관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하고 있는데 다시 소리치죠.
“당장 저 여자를 쏴 죽이라고.”
그녀가 한 마디 합니다.
“그래봤자 유태인 한 명 죽이는 거에 지나지 않죠.”
“나도 알아.”
결국은 그 자리에서 총으로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그 건축가의 말대로 다시 기초공사부터 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그랬던 애몬 괴트가 사업가인 쉰들러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쉰들러가 술을 마시면서 애몬 괴트에게 말하죠.
“권력이란 살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없죠. 중국 황제의 일화가 있습니다. 물건을 훔친 도둑이 황제 앞으로 끌려와서 엎드려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죠. 당연히 자신도 죽을 줄 알고 있었고요, 황제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그냥 살려줬습니다. 그게 진정한 권력이죠.”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애몬 괴트는 마구간에서 자신의 애마를 보살피던 유태인 소년이 말안장을 땅에 떨어뜨리는 걸 보게 됩니다. 애몬 괴트는 말안장이 얼마나 비싼 건지 아냐고 소년에게 화를 내죠. 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였겠지만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면서 그냥 용서해 줍니다.
또 다른 날, 수용소에서 순찰을 돌다가 독일병사가 한 소년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이유는 묻습니다. 근무지에서 담배 피우는 걸 적발해 끌고 가는 중이라고 보고하죠. 애몬 괴트는 쿨하게 한 마디 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해.”
또 한 번은 숙소의 욕조에서 솔로 청소하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보고 드립니다. 욕조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뭘 사용했지?”
“비누를 사용했습니다.”
“비누? 양잿물 안 썼어?”
아이는 이젠 큰 벌을 받겠구나, 하는 표정을 짓는데 애몬 괴트는 예상 밖의 말을 합니다.
“용서해 줄 테니까 가봐.”
그리고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애몬 괴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봅니다.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황제처럼 말하죠.
“널 용서하마.”
그리고 숙소 밖으로 나간 아이를 향해 총을 쏩니다. 죽이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위엄을 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황제처럼 관용을 베풀었다는 걸 알라는 뜻이었죠.
애몬 괴트가 악인의 전형처럼 느껴진 건 악에 대한 탐미적 태도 때문입니다. 그는 살인과 파괴 자체를 즐깁니다. 그게 에너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과시와 관용을 베푸는 황제의 망상까지 있죠. 누구의 명령을 받은 마리오네트가 아니라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악마를 본 것 같아 몸서리가 쳤습니다.
그밖에 기억에 남는 악인 캐릭터 몇 명이 있습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 <화니와 알렉산더>의 에드바르드 베르게루스 목사(얀 말름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토드 필립스 감독 <조커>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왈츠), 코엔 형제 감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등등. 그런데 이런 악인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성격적 결함을 이념으로 왜곡해 일탈과 파괴적 행동을 보여주거나 사회적 차별과 소외 때문에 반사회적인 사이코로 전락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죠.
어쨌든 미학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악인은 애몬 괴트입니다. 그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 랄프 파인즈의 공도 빼놓을 수 없죠. 촬영 중에 얼마나 미웠던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랄프 파인즈를 쳐다보기도 싫었다는 게 헛말은 아닌 듯합니다.
영화는 재현이 아니라 창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