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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Sep 22. 2024

영화 <베테랑2> 흑백이 아닌 회색으로 본 세상

   유승완 감독의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와 비슷한 색깔을 띱니다. 만화적 B급 성향 속에 선명한 주제를 담고, 강렬한 액션으로 엄숙주의를 해체시켜 버림으로써 짜릿한 통쾌함을 선사하는 게 비슷하죠. 두 사람이 영화감독으로서 걸어온 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엘리트 코스가 아닌 골방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배우고, 현장에서 몸소 터득해 자신의 입지와 장르를 개척해 성공한 것도 비슷합니다. 거기다가 두 감독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도 뚜렷하죠.


  <베테랑2>를 보고 나서 든 생각. 전편인 <베테랑>은 권선징악이라는 사회적 명제에 초점을 맞춰 통쾌함을 선사했지만 <베테랑2>는 우리가 일상에서 심리적으로 겪게 되는 정의의 딜레마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은 우리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병리적인 현상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지만 캐릭터의 심리와 액션이 비선형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산만한 느낌이 들어 스토리에 몰입되기 어렵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대한 오마주 같은 비 오는 밤에 옥상에서의 피나는 결투와 남산에서의 파쿠르 액션, 터널 안에서 벌이는 라스트 액션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의 흐름과 긴장감이 차곡차곡 모여 일시에 폭발해 극적인 카타르시스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단순한 액션 씬에 그쳐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베테랑2>를 보고 나서 느낀 점 두 가지.

  첫째, 오프닝 씬인 주부도박단 검거장면을 부감 샷으로 찍고, Baccara의 ‘Yes Sir, I Can Boogie’의 음악과 함께 뜬금없는 유머가 이어질 때 <베테랑2>가 오락과 재미로 방향을 잡았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와 극적 메시지는 오프닝 씬에 어느 정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건의 핵심이 연쇄살인범으로 모아지는가 싶었는데 학교폭력, 사이버 렉카, 보험사기와 가짜 뉴스, 사법 제도의 문제점, 유튜버의 상업적인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군중까지 확대되면서 대중의 분노와 사회적 정의를 비질란테를 통해 질문을 하는 게 영화적 메시지라고 이해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정의감에 따른 사적 제재의 스토리는 이미 익숙한 소재입니다. 새로울 게 없죠. 그런 만큼 비질란테 스토리가 완결성을 띠려면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극적인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베테랑2>가 공허하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박선우(정해인)의 서사와 심리는 거의 없고, 액션만 있기 때문입니다. 느슨한 사법제도의 허점으로 풀려난 자를 응징하는 범죄자에 대한 열렬한 응원이 사회적 정의의 에너지가 되는 아이러니는 흑백논리로 단순화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며,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베테랑2>가 제기하고 있는 사적 제재와 응징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정의 복잡성에 관한 것이기에 그것을 구현하는 극적 인물의 심리 묘사는 필연적입니다. 박선우한테는 그런 심리 묘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전투력으로 무장된 액션만 있는 해치가 된 셈입니다. 어찌 보면 사이코에 지나지 않는 인물로 여겨지죠. 터널 속에서 벌이는 라스트 씬은 그래서 더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가짜 뉴스에 악녀가 된 다문화 가정 ‘투이’의 목에 파이프를 설치한 것이나 깨진 유리조각을 수북이 바닥에 늘어놓고 그 가운데 ‘정의부장’을 의자에 묶어둔 채 벌이는 결투 씬에서 그렇게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명쾌한 권선징악의 <베테랑>에서 진화된 <배테랑2>는 인간 본성의 분노와 사회정의 복잡성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허술한 구성과 스토리로 액션만 넘치는 그림이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 주인공 서도철(황정민)의 매력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도덕적 정의감과 약자에 대한 인간적 연민, 그리고 타성에 젖은 관료주의에 까칠하게 맞서는 고집과 극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투지를 들 수 있습니다. <베테랑2>에서 서도철은 여전히 직업적 소명의식이 투철하고, 강력계 팀을 이끄는 리더의 변모도 변함없습니다. 서도철이 변사체를 수습하는 현장에서 동료들한테 말하는 대사 가운데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어?”라는 말속에는 그 어떤 살인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보편적 정의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 신념이 있기 때문에 서도철이 목숨을 걸고, 박선우를 잡는 거겠죠.

  하지만 그도 한 가정의 가장일 수밖에 없죠. <베테랑2>에서 우리의 보통의 가족과 일상이 잘 녹여져 있어서 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맞벌이 부부의 일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고, 범죄자를 잡는 형사로서 아들 우진(변흥준)이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됐을 때 아버지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심정에 공감이 됐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아들 우진에게 “내가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는 말 한마디에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애정과 함께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면모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또한 라면을 끓여 식탁위에 올려놓고 짜다고 툴툴대지만 아들 우진과 아내 주연(진경)이 한 젓가락씩 나눠먹는 모습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이고, 가족은 끝까지 함께 하는 운명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족 – 아무리 시장논리라고 해도 상영관 90%가 넘는 점유율은 참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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