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브래스카>를 보고 나면 인생의 진액을 짜낸 걸 마신 듯한 느낌이 듭니다. 공허하고, 우울했던 주머니에 묵직한 금덩이 하나가 들어있는 기분마저 들죠. 평범한 노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에 대한 대리 체험의 보상을 얻고, 가족 혹은 인생을 깨닫는 개안까지 하게 됩니다. 이거야말로 엄청난 부작용이죠. 영화가 뭔데 신도 하지 못하는 이런 반응이 일어날까요.
스토리는 간결하다 못해 맹맹합니다. 빛나는 영웅적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고, 심장을 오그라지게 만드는 극적인 서사도 없습니다. 그저 한 평범한 노인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우디(브루스 던, 로라 던의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로 알코올 중독에 치매증세까지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백만 불에 미쳐있습니다. 홍보회사로부터 날아온 광고 우편물을 받고 난 뒤죠.
‘우디 그랜트에게 1백만 달러를 지급하겠습니다.’
메가 경품 마케팅인데 거의 사기입니다. 우디는 백만 불을 찾으려고 길을 나섰다가 경찰에 의해 둘째 아들 데이비드에게 인계됩니다. 결국 우디의 백만 불을 찾겠다는 습관성 가출로 데이비드는 아버지와 함께 마케팅 홍보회사를 직접 찾아갑니다. 입이 걸쭉한 어머니 케이트는 둘 다 미쳤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두 사람은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몬태나 빌링스에서 1,200km 떨어진 네브래스카 링컨시로 차를 몰고 떠납니다. 아버지 우디가 백만 불을 받으면 꼭 사고 싶은 게 두 개 있는데 새 트럭과 공기압축기입니다. 늘 그걸 사겠다고 노래를 부르죠.
몬태나를 떠나 네브래스카로 가던 중 주유소에 들러 아들이 기름을 넣을 때 아버지 우디는 술집에 들어간 술 한잔부터 빨아댑니다. 알코올 중독 자니까요. 그 술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두 분이 어떻게 결혼하게 된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지.”
“적어도 처음에는 사랑했을 거 아니에요?”
“늘 후회했지.”
“자녀 문제는 상의해 본 적 있으세요? 몇 명을 낳을지 그런 거요.”
“떡 치는 거 좋아해서. 떡 치는 동안 대충 짐작은 했지. 몇 명은 나오겠다 싶었어.”
그리고 고향인 호손 시에 들러 우디의 형이자 데이비드한테는 큰아버지 인 집에 들르게 됩니다. 거기서 사촌들로부터 조롱당하죠. 오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는 이유로요. 화물차를 뒤에 달고 왔느니, 후진으로 왔느니 놀려댑니다. 20년 만에 고향에 온 우디는 당연히 술집으로 직행합니다. 거기서 40년 전에 자신의 공기압축기를 빌려 간 친구 에드 피그램을 만납니다. 그리고 아들 데이비드는 아버지 우디에게 백만 불 광고지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죠. 그런데 그걸 금세 무시하고, 술집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말합니다. 술집이 난리가 나죠. 큰집 가족들도 이런 사실을 알게 돼 전부 흥분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사촌들은 백만 달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말하고, 큰형은 부모님이 아주 널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하죠. 마을사람들도 우디를 쳐다보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지갑을 조심하라고 걱정까지 해주죠.
다음 날 빌링스에서 호손으로 어머니까지 오게 됩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가족은 마을의 공동묘지로 가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묘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신이 처녀였을 때 썸을 탔던 남자의 묘비명 앞에서 어머니는 걸쭉한 입담을 또 늘어놓습니다.
“그때 고리타분한 얘기만 안 했어도 내가 한번 줬을 텐데.”
그리고 묘비명 앞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속살을 보여주는 서비스를 베풀죠. 지금은 폐가가 됐지만 가족들은 우디가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을 돌아보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죠. 차를 몰고 돌아오다가 어느 집 앞에 섭니다. 그리고 형 로스와 아우 데이비드는 창고로 달려가 40년 전에 빌려 간 공기압축기를 훔쳐 차에 싣고 냅다 달립니다. 그런데 그 집은 에드의 집이 아니었죠. 우디가 자신의 공기압축기가 아니라고 하자 형제는 이 사람한테는 복수할 게 없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기압축기를 창고에 돌려놓습니다. 이때도 엄마가 한마디 합니다.
“이제 너네 뭐 할 거니? 곡식 보관창고에 가서 옥수수라도 털껴?”
그리고 다시 밤에 마을의 술집에서 에디는 마을 사람의 축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습니다. 이번에도 어머니의 입담은 빠지지 않죠. 40년 전 공기압축기를 빌려 간 에드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자 남편 우디에게 말합니다.
“저 새끼가 가진 유일하게 좋은 게 목소리지. 저놈이 예전에 나를 맨날 따먹으려고 시도했던 거 아슈?”
아들 데이비드가 한마디 합니다.
“맙소사, 이 마을 전체가 엄마를 따먹으려고 그랬어요?”
“진짜 여자를 보면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들었어. 그런 때였어.”
우디가 백만 불을 받게 됐다는 걸 안 에드가 제일 먼저 흑심을 드러냅니다. 예전에 자신한테 우디가 빌려 간 돈이 있다고 하면서 그걸 갚으라고 합니다. 변호사 부를 거 없이 1만 불로 퉁치자고 하죠. 데이비드는 단칼에 거부합니다. 그렇게 술집에서 사람들의 환호와 부러움을 받고 밖으로 나왔다가 강도를 당해 광고 전단지가 든 지갑을 뺏기게 됩니다. 강도는 사촌들이었죠. 결국 로또가 아니라 사기성 광고 전단지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고, 우디는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합니다.
한참 조롱을 당한 뒤 술집 밖에서 아버지 우디에게 아들 데이비드가 백만 불이 있으면 그 돈으로 뭘 하려는지 따지듯 묻습니다. 우디가 담담하게 말하죠.
“돈을 갖고 싶어.”
“나머지 돈은 뭐 하게요? 트럭 하나 사는데 백만 달러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너희들 주려고 했지. 그냥 뭐라도 남겨주고 싶었다.”
우디는 돈을 찾으러 거겠다고 또 큰형 집에서 나와 거리를 헤맵니다. 아들은 우디를 차에 태우고 링컨시의 마케팅 홍보회사를 찾아갑니다. 담당 직원은 우디가 내민 광고용 전단지를 보고 당첨자가 아니라고 말하자 우디는 낙담합니다. 직원은 위로차 기념품을 줍니다. Prize Winner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 누가 보면 진짜 백만 불의 당첨자라고 여길 만한 모자였죠. 우디가 그 모자를 쓰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 데이비드는 중고차 거래상에 들러 자신의 차를 팝니다. 그리고 그 차액의 돈으로 아버지 명의로 된 트럭과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이동식 공기압축기까지 사죠.
뜻하지 않은 선물에 아버지가 묻습니다.
“당첨금 주는 사람들 하고 무슨 얘기가 된 거냐?”
아들 데이비스는 아버지를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트럭 정도는 주겠다고 하더군요.”
우디는 당첨금 모자를 쓰고, 자신을 조롱했던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새 트럭을 직접 운전하며 한껏 멋을 부립니다. 마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아버지는 정말 백만 불을 받은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영화 <네브래스카>를 보고 느낀 점 몇 가지
첫째, <네브래스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섬세한 감정을 통해 인생을 통찰합니다. 과장하지도 않고, 포샵해서 환상적이지도 않은 맹맹한 스토리지만 보고 나면 울림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잭 니컬슨과 케시 베이츠가 출연한 <어바웃 슈미트>도 가족에 초점을 맞춘 비슷한 질감의 영화입니다. 특히 <네브래스카>는 더 가디언이 뽑은 21세기 100대 영화에 29위의 영화입니다.
둘째, 과거와 현재가 수평과 수직으로 만나는 극적인 과정을 흑백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깊이와 사실감을 높여줍니다. 주인공 우디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 이유는 참혹한 6.25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걸 흑백으로 담담하게 담아내죠. 6.25로 인한 고통이 완료형으로 끝난 게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흑백 촬영이 훨씬 더 정서적으로 와닿습니다. 특히 우디가 겪고 있는 가족과의 단절, 노인의 외로움과 일확천금의 환상, 물욕과 이기심으로 무너진 공동체의 허상을 서늘하게 보여줍니다.
셋째, 아버지 우디와 아들 데이비드가 함께 길을 떠나는 로드 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초점이 맞춰진 건 가족과 인간애입니다. 그런데 그 형식은 매우 거칠고, 세련미와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디가 툭툭 내뱉는 대사나 어머니의 걸쭉한 입담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잔혹한 언어폭력으로 느껴지거나 인간관계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캐릭터는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인생이 투영돼 있고, 유머이기도 하죠, 또 어떤 점에서는 그런 캐릭터에 연민이 묻어나고, 감독이 캐릭터에 대해 독특하게 애정을 표현한 거라 할 수 있죠. 관객의 성향에 따라서 그 캐릭터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넷째, 정적인 흑백 촬영으로 보여주는 미국 중서부의 황량한 배경은 모든 게 돈으로 수렴되는 아메리칸의 비극으로 환원됩니다. 추억마저도 초라하게 만드는 폐허가 된 옛집, 푸른 에너지가 쑥 빠져나간 들판과 산, 활기가 전혀 없는 마을, 돈의 유무에 따라 표변하는 마을 사람들까지 주인공 우디의 가난과 조응되는 현실입니다. 캐릭터 내면과 조응하는 쓸쓸한 풍경입니다. 그러니까 배경 자체가 인물의 심리와 정서에 맞닿아 있는 미장센으로 기능을 하는 셈이죠.
다섯째,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우울한 모드지만 그래도 연민과 희망, 그리고 감동을 간과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마케팅 홍보회사에서 낙담하고 돌아올 때, 중고차 거래상에 들러 데이비드가 자신의 차를 팔아 아버지를 위해 트럭과 이동식 공기압축기를 사는 장면입니다. 요란하게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용서하는 전형적인 가족화해가 아니라 말없는 작은 몸짓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거죠. 그래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건 신뢰의 회복이고, 가족애의 구현이죠. 물질로 구원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회복하는 겁니다. 따뜻하고, 감동으로 와닿는 건 소소하지만 이기심 때문에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의 진정성 때문입니다. 아들은 겉으로 내세우지 않고, 아버지의 구겨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건 가족이 영원히 존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섯째, 도로와 길의 상징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인생이 걸어온, 지금 걷는, 앞으로 걸어갈 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선형이면서 동시에 뫼비우스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은 그 길을 걸을 때 현존재로서 의미를 띱니다. 길은 물리적인 대상이면서 동시에 은유적 매체인 셈이죠. 그 길을 화려하게 수식하지도 않고, 감정 과잉으로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인생이 있기에 길이 있고, 길이 있기에 인생이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거겠죠. 우리는 지금도 그 길을 걷는 중입니다.
사족 – 아버지 우디가 아들 데이비드한테 한 말,
“(백만 불)너희들 주려고 했지. 그냥 뭐라도 남겨주고 싶었다.”
그게 세상 모든 아버지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