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밥 딜런은 밥 딜런이다

by 노란하마

세상을 살아가는데 밥 딜런을 모른다고 해서 불편할 게 없습니다. 취업할 때나 데이트할 때도 밥 딜런이 필수사항은 아니죠. 밥 딜런을 모른다고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밥 딜런의 노래를 들어보지 않았다는 건 멋진 음악적 체험을 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적 결핍을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밥 딜런은 단순히 가수라기보다 6~70년대 사회문화적 격변기에 젊은이의 시대정신을 노래한 메시아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인권과 전쟁, 자유와 평등은 그의 시적인 가사와 리듬에 담긴 주된 메시지입니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1961년부터 1965년, 열아홉 살의 촌뜨기인 밥 딜런(티모시 샬라메)이 달랑 2달러를 들고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대도시인 뉴욕으로 와서 포크 음악계의 신성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 전기적인 영화입니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포드 V 페라리> <로건 > <더 울버린> <앙코르> <나잇 & 데이> <3:10 투 유마> 등 장르 불문하고, 다방면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보는 저평가된 두 영화감독은 <파이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을 연출한 데이비드 O. 러셀과 제임스 맨골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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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하나 들고 뉴욕으로 온 밥 딜런은 그의 우상인 우디 거스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서 그에 대한 헌정곡 song to woody를 부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죠. 노래가 끝나자 말을 하지 못하는 우디는 손으로 벽면을 네 번이나 격하게 치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옆에서 지켜본 당대 포크계를 주름잡던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도 감동하죠. 그를 시기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후원자가 됩니다. 밥 딜런은 피트의 주선으로 뉴욕 웨스트 빌리지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하게 되고 관객들의 격한 박수를 받게 되죠. 그리고 교회에서 공연을 한 후 그의 연인이 된 실비 루소(엘르 패닝)를 만나고, 클럽에서는 당대 포크계 여왕 존 바에즈(모니카 바바로)도 만납니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 뉴욕에 와서 사람을 만나고, 공연을 하고, 포크계의 신성이 되어 결국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구성, ‘만남과 헤어짐’이 중요한 모티프인 영화입니다. 그 ‘만남과 헤어짐’의 시기가 1961~65년이며, 그 극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당연히 밥 딜런입니다. 무명의 밥 딜런이 뉴욕에 와서 포크 음악계 스타가 되지만 그와 연관을 맺었던 사람들,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실비 루소, 존 바에즈와 결별을 하고 진짜 밥 딜런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어찌 보면 <컴플리트 언노운>은 다큐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영화입니다. <앙코르>처럼 격하고, 뜨거운 로맨스도 없고, <로건>이나 <울버린>처럼 아서왕적인 영웅의 기행을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영혼이 담긴 노래를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거죠. 그렇다고 그 목소리가 미성도 아닙니다. 오히려 약간 신경질적이고, 뭔가 결핍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죠. 그런데 그게 치명적인 매력입니다. 데이비드 보위가 말한 것처럼 ‘모래와 접착제 같은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흔들어놓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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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밥 딜런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커버송으로 부르는 이유는 밥 딜런의 영혼과 정신 때문입니다. 60년대에 사회적 격변기에 미래사회를 내다보고, 인류의 시대정신을 노래한 건 그가 평범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게 어떤 한 시대나 상황에 국한되는 게 아니죠. 그의 시적인 메시지는 완료형으로서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서 살아있는 철학이기도 합니다. 고정된 형식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노래했던 밥 딜런은 이전에는 없었던 길을 그 스스로가 걸어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입니다. 음악방송을 틀면 흔하게 들리는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연가도 아니고, 현실과 기대의 격차를 메워주는 판타지도 아니죠. 대형 마트에서 세일하는 것 같은 힐링용 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듣는 이에 따라 의미도 다르고, 감흥도 달라지는 노래죠. 거기에는 무엇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담겨 있기에 그 코드와 가사는 어느 시대든 어느 곳에서든 함께 느끼고, 호흡할 수 있죠.

그런 영화적 체험을 영화관에서 직접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컴플리트 언노운>의 인상적인 장면들

첫째, 60년대 흑인 인권운동, 쿠바 미사일 사태, 케네디 암살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밥 딜런의 노래가 어우러져 펼쳐집니다. 밥 딜런의 노래에 인권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의 정신을 담은 건 적어도 인간이라면 똥 만드는 기계로만 살 수 없다는 양심과 시간이 멈춘 무능한 뮤지션으로서 살 수 없다는 자기 선언입니다. 그런 에너지가 당대를 지배하고 있던 근본주의 포크 음악계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포크록의 시대를 연 거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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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극단적인 이기주의 뮤지션의 불편한 캐릭터가 매력적인 대사로 잘 표현돼 있습니다.

밥 딜런이 존 바에즈의 곡에 대한 지적질.

“너무 힘을 줘. 작곡하는데.”

“그래?”

“듣기에 그래.”

“아니야.”

“석양의 갈매기, 미나리아재비 냄새, 꼭 치과벽면에 걸린 유화 같잖아.”

(우리식으로는 이발소에 걸린 물레방앗간 그림)

“너 좀 재수 없구나.”

“맞아.”

애인 실비가 밥 딜런에게 비꼬듯이 “너 신이야?”에 대해 쿨하게 답하죠. “그래. 맞아.”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대중에 대해 보이는 시니컬한 반응.

“다들 어디서 영감을 받았냐고 물어봐. 근데 표정을 보면 그게 궁금한 게 아니야. 왜 그 영감이 자기들한테 안 왔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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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신성불가침한 제국의 황제인 뮤지션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 격하게 몰입됩니다. 밥 딜런이 공연장에서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을 부를 때, 조니 캐시(보이드 홀브룩)와 피트 시거, 존 바이즈의 눈빛들이 좌절하듯 뚝뚝 부러집니다. 이미 밥 딜런은 그들의 경쟁자가 아닌 경외의 대상이었던 거죠. 대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본 실비 루소의 눈빛도 흔들리죠. 아, 밥 딜런은 나의 개인적인 소유가 될 수 없는 대중의 태양 같은 존재구나 하는 깨달음 뒤에 몰아치는 상실감. 실비는 결국 밥 딜런을 놓아줍니다.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면 자신만 더 괴롭고, 초라해질 테니까요.


넷째, 코엔 형제 감독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마지막 장면인 Gaslight 카페에서 밥 딜런이 부른 노래가 Farewell이었죠. 르윈은 밥 딜런이 되지 못한 채 Gaslight에서 비운의 뮤지션으로 막을 내리는데 반해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 포크계의 신성이 되고, 전성기를 열게 되죠. 그렇게 르윈과 밥 딜런이 교차되는 장면이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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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음악영화의 즐거움은 라이브 녹음으로 된 노래를 듣는 것입니다. 기타를 칠 줄도 모르고, 하모니카를 불 줄도 모르는 배우들이 몇 년 동안의 노력으로 실제 인물에 가까운 노래와 연주, 몸짓까지 소화해 낸 건 대단한 연기입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말할 것도 없고, 에드워드 노튼, 모니카 바바로, 보이드 홀브룩에 이르기까지 정말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여섯째, 우디 앨런 감독이 연출한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티모시 샬라메와 엘르 패닝이 잘 어울리는 로맨틱 해프닝을 가볍고, 즐겁게 보여줬는데 <컴플리트 언노운>에서도 케미가 잘 맞습니다.


사족 – 노벨상 사무국에서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담당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 비서가 밥 딜런이 잠자고 있다면서 바꿔주지 않았다고 하죠. 전해주긴 하겠다나.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시상식에도 당연히 참석하지 않았고요. 밥 딜런이 세상의 타성적이고, 통속적인 틀을 깨부수고,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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