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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ug 12. 2021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2

- 선과 관계로 인화된 행복과 불행의 서사

  2. 관계에 의한 행복과 불행             

  인간은 관계에 의해 존재가 드러나고, 의미를 갖는다. 관계적인 삶은 인간의 숙명이다. 수억 개의 라이벌 정자들을 물리치고 난자와 결합하여 한 생명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경쟁관계의 결과이다. 세상에 태어난 뒤에는 사는 것 자체가 관계의 지속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든지 가족관계, 교우관계, 사업관계, 경제관계, 신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물질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인간의 관계를 통해 행복과 불행을 보여준다. 치밀하게 절제된 감정과 냉정한 시선으로 엮어진 관계이기에 측은지심 같은 인간 본성은 끼어 들 여지가 없다. 연민은 극히 제한적이고, 관객의 보편적 동정심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그만큼 냉정하다.


  · 톰과 제리의 관계 

  톰과 제리는 부부관계이다.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를 의도적으로 차용해 견원지간이 아닌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 완벽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디얼 타입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톰은 지질학자이고, 제리는 심리상담사이다. 직업적인 특성으로 볼 때 지질학자와 심리상담사는 유사성이 있다. 지질학자는 지구가 오랜 시간과 압력을 견뎌오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탐구한다. 퇴적된 광물을 분석한 데이터는 공학적으로 활용된다. 샘플을 통해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지층의 성분을 들여다보는 톰의 눈빛에서는 지적 호기심을 넘어 전문가의 충족감마저 느껴진다. 지질학이 도시건설과 산업기반을 닦는 데 공학적으로 유익하게 활용된다는 점에서 톰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지질학자가 지층의 단면을 분석하는 것처럼 심리상담사는 환자의 억눌린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조언을 하는 것이다. 톰과 제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케미를 이루고,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부부이기도 하다.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균형과 안정을 이루고 있는 부엌에서 톰은 음식을 만들고, 제리는 시식을 하며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부엌의 소도구들은 부르주아들의 천박한 탐욕과 허영심을 보여주는 미장센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신뢰와 애정의 흔적이다. 허튼 욕망과 탐욕의 얼룩은 보이지 않고, 게으른 중산층이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배제된다. 그러므로 안정되고 균형을 이룬 부엌은 싱크대를 중심으로 하층계급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키친 싱크 리얼리즘(kitchen sink realism)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톰과 제리의 부엌은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콘트라스트의 기능을 하고 있다. 톰과 제리의 삶을 통해 메리와 켄이 겪는 슬픔과 절망이 입체적이고,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톰과 제리가 결핍과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연민보다는 매우 분석적이고, 냉정하다. 환자가 억눌린 삶에서 벗어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제리의 역할지만 그의 조언은 위로와 위안을 주기보다는 극히 사무적이다. 막연하게 잘 될 거라는 낙천적 희망 따위는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 제리는 괴로운 현실을 맞닥뜨리게 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제리의 말이 메리나 자넷한테 괴로운 현실로 자연스럽게 환원되는 것이다.       



  · 제리와 메리의 관계  

  제리와 메리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료이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아 세세한 일상을 공유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구분되고, 뒤틀어지다가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된다. 제리가 꿈꾸는 행복의 욕망에 대한 원형은 제리와 톰의 가족과 맞닿아 있다. 메리가 제리의 아들인 조에게 연정을 품는 건 동료관계의 선을 넘은 과욕이다. 연정이 상호 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기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입 안에 있던 침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 더러운 느낌이 드는 것처럼 욕망도 마찬가지로 밖으로 드러나면 추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과거 유부남에게 상처를 입고, 현재도 결핍된 현실에 억눌려 있는 메리가 안정된 삶의 보상심리를 꿈꾸는 것을 탓할 수 없지만 그게 타인을 불편하게 한다면 더 이상의 관계는 지속 불가능하다.   

  메리의 삶은 애초부터 작위적이고, 위태롭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이루려는 게 아니라 우연과 선택에 의존하는 태도에서 빚어진 것이기도 하다. 메리가 펍에서 낯선 남자한테 보내는 관심의 시선이 안쓰럽고, ‘누구한테나 고민 상대는 필요한 거.’라고 말하며 제리와 조한테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하지만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과 의지할 상대가 필요한 건 정작 메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을 계속 쳐다봤다거나 카센터 직원이 자신을 추행하려 했다는 메리의 말은 신뢰도 가지 않고, 허망하게 들릴 뿐이다. 

  톰과 제리의 집이 ‘정말 편안’하고, ‘여긴 참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거기에 깃들어있는 행복과 풍요가 메리한테까지 허용된 건 결코 아니다. 자꾸 경계가 지어진 선을 넘으려는 메리한테 제리가 ‘여긴 내 가정이야. 그걸 이해해야 돼.’라는 경고와 함께 ‘화난 게 아니라 실망했을 뿐이야.’라는 말로 관계의 파탄을 알리는 것은 삶의 기준과 경계가 분명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방어기제이다. 선을 넘는 자로 인해 오랫동안 지켜온 안정과 균형이 무너진다면 결핍을 겪고 있는 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은 오히려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감정으로 표변할 뿐이다. 

  술에 취해 자신의 불행한 삶을 토로하다가 침대에 쓰러진 메리의 보고 제리가 ‘점점 더 심해져.’라는 말에 톰이 ‘불행해서 그래.’라고 응답하는 건 행복한 자가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풍요로운 삶을 사는 자들이 누리고 남는 행복의 잉여물이 있더라도 그건 결코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마이크 리가 바라보는 행복과 불행의 핵심적 전언이다. 초라하게 무너져 내리는 메리를 보며 제리가 ‘죄책감이 들어.’라고 말하면서도 ‘때론 삶이 참 잔인하다.’고 하는 것은 연민이나 동정으로 행복을 견인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리의 악의 없는 담백한 표정이 더 전율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이다.     



  · 톰과 켄의 관계

  톰과 켄의 관계는 제리와 메리의 동일한 버전의 반복이다. 켄은 불행의 스펙트럼을 더 넓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제리와 메리가 직장동료로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행복과 불행 앞에서는 배타적인 관계가 되는 것처럼 톰과 켄도 그럴 수밖에 없다. 톰과 켄이 어릴 적부터 수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게 현재 겪고 있는 켄의 열패감과 불행을 치유해주는 것은 아니다. 켄의 열패감과 불행은 그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것도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사과는 자신이 손에 쥐고 그것을 먹으려고 할 때 세잔느 정물화의 오브제와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매체로서의 원적 양상을 무화시킨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스스로 이룰 때 온전하게 자신의 것이 된다. 그 이외에 행복이란 다른 사람의 몫이고, 단지 사전에 수록된 단어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 켄과 제리의 관계 

  켄과 제리는 비슷한 질감이 느껴지는 캐릭터이다. 불안정한 궤도와 삶의 결핍, 자기 패배적인 의식과 타인에 대한 의존적인 태도까지 유사하다. 제이크 리 감독은 톰과 제리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이 이층 화장실로 올라가는 극적 행동을 통해 결핍과 불행의 일란성쌍둥이의 모습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 그러한 재치의 기의는 결핍과 불행의 인생이다.  

  켄이 메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작정의 관심과 애정이다. 그런 시선을 받는 메리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제리가 정원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에게 볼 키스를 하지만 켄한테는 의도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과 켄을 모멸감이 뒤섞인 동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관객한테는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마이너스의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의 결합이 결코 바람직한 조합이 아닌 것을 관객들도 익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켄이 차 안에서 메리한테 ‘좋아해. 전화해도 될까?’ 했을 때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솔직히 말하지만 난 그런 감정 없어요.’라고 야멸치게 거부하는 것은 결핍과 불행을 결코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반응이다. 메리한테는 우울하고 어두운 입구가 아니라 밝고 환한 정원이 필요한 것이다. 결핍을 겪고 있는 자가 또 다른 결핍을 겪고 있는 자와 엮이게 되면 더 끔찍한 지옥이 펼쳐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메리의 이와 같은 격한 태도는 불행은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질 뿐이고, 불행한 자가 불행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정서적인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메리는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향해 손을 내뻗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켄에 대한 제리의 반응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조와 케이티의 관계

  사랑은 청춘들의 자연스러운 중력이다. 시소 같이 주고받는 아기자기한 사랑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혼자 있을 때 겪게 되는 평범한 시간도 둘이 있게 되면 의미를 만든다. 각각의 개인이 사랑으로 엮이게 되면 하나의 시공 안에서 우리로 발전한다. 조와 케이티의 관계는 인간 본성의 사랑에 대한 기호이면서 가족관계로 확대되는 모멘트가 되기도 한다. 조와 케이티가 톰과 제리의 집으로 오게 되면 행복과 활력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메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타인으로 소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계획되거나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메리의 상대적 박탈감은 필연적이고, 상처도 치명적이다.       



  · 메리와 차의 관계 

  봄 : 차를 살 계획을 세움 → 여름 : 구매한 차로 생활의 변화가 일어남 → 가을 : 차는 행복을 견인하지 못하고 애물단지로 전락 → 겨울 : 문제만 일으키는 차를 폐차시킴 

  메리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면서도 차를 사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건 행복에 대한 욕망과 자기 과시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차는 단순히 이동수단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재화이며, 계급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로 수렴되는 사회에서는 좋은 차일수록 욕구 충족에 비례하며, 계층과 신분을 드러내는 척도가 된다. 메리가 제리한테 차를 살 계획을 말할 때 득의만면한 표정을 짓는 건 차가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이다. ‘나는 차를 사야 해서 휴가를 갈 여유가 없다.’거나 ‘여유 돈이 있으면 둘 다 할 수 있지만.’ 같은 메리의 대사에서 차가 가져다 줄 행복에 대한 기대심리가 물씬 묻어난다. 섹스는 섹스를 하기 3분 전의 기대심리가 최고 절정을 이루는 것처럼 차도 차를 사기 전의 구매욕구가 최고의 기대심리로 작용하는 법이다. 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게 현실이 되면 타성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최고 절정의 기대심리에 빠져 있던 메리에게 작고 빨간 중고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운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메리가 여름에 차를 구매한 뒤 지인들 모임이 있는 제리의 집으로 올 때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지인들에게 차를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운전미숙과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엉망이 되고 만다. 그래도 메리는 ‘운전을 하니까 내가 완성된 느낌이야.’ ‘차 한 대가 내 삶을 바꾸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차로 인해 생기게 될 더 큰 문제의 출발점이 될 뿐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조에게 품었던 연정의 꿈이 케이티의 출현으로 산산조각 났을 때 차도 똑같이 괴로운 현실에 짐을 하나 더 얹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차의 시동이 잘 걸리지 않고, 차 안에 있는 물건을 도난당하기도 한다. 거기다 연이어 타이어가 펑크 나고, 와이어까지 도둑맞는다. 또 주행 중에 속도위반을 하게 되고, 제한구역에 주차해 견인까지 된다. 650파운드를 주고 산 빨간 차에 들어가는 수리비용이 5백 파운드나 된다. 이쯤 되면 차 가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는 게 아니라 차에 저당을 잡히는 인생이 되고 만다. 차 한 대가 인생을 바꾼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차 한 대 때문에 인생이 더 피곤하게 되는 것이다. 

  겨울에 톰의 집에서 로니를 만난 메리는 빨간 중고차를 폐차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폐차한 대가로 겨우 20파운드를 받았다는 것과 그것으로 와인을 사서 마셨다는 처연한 대사는 자연스럽게 메리의 인생으로 환원된다. 초췌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 퀭한 눈으로 콧물을 훌쩍거리며 ‘여긴 정말 편안해요.’ ‘여긴 참 평화로워요.’ ‘다른 데로 이사 가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봐요.’라고 읊조리지만 그 어느 다른 곳도 메리의 행복을 위한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고, 그녀에게 남아 있는 건 외로움과 불행뿐이다. 

  조명은 어두운 곳을 밝히려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의 인간관계는 다양한 삶의 모습보다 제리의 불행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간관계의 교집합은 제리의 삶이고, 그 삶의 명제는 불행한 삶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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