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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Dec 01. 2021

영화 <블루 재스민>과 <어디갔어, 버나뎃>

- 케이트 블란쳇이 원톱 주연으로 펼치는 명품 연기를 만나다 

 

 영화 <블루 재스민>과 <어디갔어, 버나뎃>은 자의식 과잉으로 인한 현실과의 불협화음을 케이트 블란쳇이 명품 연기로 멋지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블루 재스민>은 우디 앨런이 연출했고, 원톱 주연의 케이트 블란쳇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디 앨런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버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테네시 윌리암스가 각본을 쓰고, 엘리아 카잔이 연출했던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죠. 비비안 리가 여주인공 블랑쉬의 역할을 맡았고, 말론 브란도가 나쁜 남자인 스탠리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재스민과 블랑쉬는 자의식 과잉으로 균형을 잃고 욕망과 과거의 환상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물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재스민의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처럼 비비안 리도 블랑쉬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두 인물의 캐릭터와 대사,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합니다. 

 

  남편 힐(알렉 볼드윈)과 함께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재스민은 뉴욕의 최상류 층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엄청난 바람둥이에 사기꾼이죠. 재스민은 힐이 자신을 속인 것에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FBI에 그의 불법 행위를 신고해 교도소에 가게 만들고, 힐은 교도소 안에서 자살을 합니다. 그로 인해 재스민의 삶도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여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집에 얹혀살면서도 허세를 부리다가 끝내는 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됩니다.  



  재스민은 허세와 사치의 끝판 왕입니다. 원래 본명도 자넷이었지만 자넷은 멋이 없고, 재스민이라는 이름이 세련되고 어감이 좋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바꿔버립니다.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하는 건 허영과 사치입니다. 샤넬 벨트와 패션, 에르메스 백, 비비에 구두야말로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죠. 빈털터리가 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신의 가방을 찾을 때도 우아하게 허세를 부립니다.  

  “저 루이뷔통 가방이 제 거예요.”

  영화는 재스민의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남루한 환경과 과거 뉴욕의 호화로운 삶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시퀀스가 진행됩니다. 관객들은 개선되지 않는 허영과 사치 때문에 끊임없는 추락하는 재스민에 대해 동정과 연민의 감정 이입이 아니라 오히려 제삼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카타르시스보다는 여주인공과 거리감을 두고 관찰하게 되죠. 그만큼 서늘한 느낌이 들고, 때로는 거부 반응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동네 마트의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여동생 진저에게 짐이 되는 인생을 살면서도 허영과 사치로 똘똘 뭉쳐진 자의식은 여전히 기고만장입니다. 

  “치과에 취직해볼래?” 

  “그런 하찮은 일을 어떻게 해. 머리가 돌아버릴 거야. 나 학교로 돌아갈 거야.” 



  자신의 형편을 망각한 채 다시 대학에 가서 인테리어를 전공으로 하겠다고 허세를 부리기도 합니다. 우연히 파티에서 멋진 남자 드와이트를 만나 다시 상류층의 삶이 사는가 싶었지만 과거에 사기를 친 일이 드러나는 바람에 그것도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하찮은 일이라고 했던 치과의 안내데스크에서 일을 하다가 치근덕거리는 치과의사한테 스트레스를 받고 밖으로 뛰쳐나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골프공 안 맞게 조심해요. 레이 베커도 그렇게 죽었어요. 관자놀이에 제대로 맞았다고요.”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채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죠. 혼자 소리로 중얼거리는 재스민을 행인은 당연히 이상한 여자라는 듯이 쳐다봅니다.   영화의 라스트 씬은 재스민이 여동생 진저와 말다툼을 한 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와 맥없이 거리를 걷는 장면입니다. 항상 아르메스 가방을 들고 다녔지만 가방 없이 맨 몸이고, 그것도 볼품없는 바지 차림입니다. 거기다 늘 끼고 다닌 선글라스도 없습니다. 흐느적거리며 걷다가 벤치에 앉아 혼자 또 중얼거리죠. 옆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던 여인은 미친 여자라고 직감하고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뜹니다. 

  재스민은 혼자 계속 중얼거립니다.      

  “팜 비치에 갈 건데 뭘 입지? 파리에서 산 디올 드레스? 그래, 내 블랙 드레스.” 

  허름한 옷차림,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눈동자, 화장기 없는 초췌한 맨 얼굴. 

  그때 오리지널 사운드 재즈 ‘블루문’이 이어지면서 엔딩 크레딧 뜹니다. 제목 <블루 재스민>처럼 우울한 재스민의 삶이 서늘하고, 씁쓸하게 관객의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재스민을 동정하기도 그렇고 비난을 퍼붓는 건 오버이며, 애정은 더욱 느낄  수 없는 인물이 돼버립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까지도 현실에서 유리된 재스민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언제나 들고 다니던 에르메스 가방을 들지 않고, 검은 바지를 입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거리를 걷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결코 그녀를 떠받쳐주던 명품도 없고, 남자들도 다 떠난 뒤 남은 건 초라한 인생뿐이었습니다. 명품이 인생을 떠받쳐주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물론 멋진 인생에 명품을 있으면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어디갔어, 버나뎃>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경단녀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영화입니다. ‘비포’ 시리즈와 <보이후드>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했고, 케이트 블란쳇이 주인공 버나뎃 역할을 맡았습니다. 

  버나뎃은 동네에서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이웃은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각다귀로 여길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버나뎃은 동네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내리는 문제적 인물이 되죠. 그녀의 일상을 도와주는 것도 가사도우미 중계회사에서 제공한 가상 비서 만줄라뿐입니다. 



  그녀가 은둔형의 삶을 살게 된 건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는 한 때 미국에서 가장 촉망받던 건축가였습니다. 최연소 여자로서 천재에게 주는 맥아더상을 수상했을 정도니까요. 그녀가 건축가의 삶을 포기한 건 젊은 시절,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공한 작품인 ‘20마일 하우스’를 유명한 퀴즈쇼 진행자인 나이절 밀스 머리가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고가로 매입해서 허물어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훼손이 전문가의 자존감까지 완전히 무너뜨린 겁니다. 그때부터 불안장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죠. 때로는 극단적인 불안증과 과대망상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이웃과 소통하지 못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그녀의 편이 되어 주고 있는 건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과 딸인 비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비가 가족 남극 여행을 가자고 요구합니다. 중학생인 비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선물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버나뎃은 불안장애가 심각한 데다 대인기피증까지 있는 터라 여행 자체가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딸아이를 실망시킬 수 없어  가족의 남극 여행 계획을 짜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FBI 요원이 찾아옵니다. 개인정보 제공하고 여행에 필요한 서류 작업과 비자, 비행기 티켓을 가상 비서 만줄라에게 부탁했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가상비서 만줄라는 허구의 인물이었고, 가사도우미 중계회사도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의 위장회사였습니다. 버나뎃 가족이 남극으로 4주 동안 떠나 있을 때, 버나뎃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전 재산을 탈취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게 FBI 첩보망에 걸린 겁니다.  



  결국 남극 여행은 엘진과 비만 떠나고, 사회불안 장애가 심해진 버나뎃은 거의 반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을 계획으로 변경됩니다. 이에 집에서 탈출한 버나뎃은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이웃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의 도움을 받아 혼자 남극으로 떠나게 됩니다.    

  홀로 남극으로 떠난 버나뎃은 그곳에서 새로운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봅니다. 무엇보다 남극점 맥머도 기지를 헐고 새롭게 건설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 버나뎃은 꾹꾹 억눌려 있던 건축가의 유전자가 꿈틀거리며 창조에 대한 열망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새로운 남극 기지 건설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 직원으로 분장하고 몰래 남극 기지까지 들어간 버나뎃은 관리자에게 거부를 당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자신의 이력을 어필합니다. 처음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관리자도 버나뎃의 이력을 알아보고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관리자가 건축가로서의 자격보다 더 중요한 자질을 말할 때, 버나뎃의 눈빛에서 반짝 빛이 납니다. 

  “거기서 일하려면 반사회적 성향이 필요해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하고, 오랫동안 운동도 못해요. 샤워도 어쩌다 할 뿐이고요.” 

  “정확히 제가 이십 년 동안 연습해온 거네요.”



  버나뎃은 건축가로서 제2의 삶을 살게 되는 기회를 얻고, 그녀의 뒤를 쫓아온 가족과도 상봉하게 됩니다. 

  <어디갔어, 버나뎃>의 제목처럼 ‘어디갔어?’는 버나뎃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억눌려 있던 자아를 찾아가면서 주변의 인물들과 소통하고, 그리고 가족의 행복도 얻게 됩니다. 버나뎃이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겪는 장애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좌절에 빠져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딛고 다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디갔어, 버나뎃>은 그런 분들을 응원하는 영화입니다.      

         


  사족 -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과 <어디갔어, 버나뎃>의 버나뎃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선글라스 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건 외부 세계로부터의 자기 방어 기제이거나 자의식을 보호하려는 생존전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블루 재스민>의 라스트씬에서 재스민이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 초췌한 얼굴로 맥없이 걷는 장면은 자아분열과 파탄에 이른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면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채 작업복을 입고 사무실에서 전화를 하다가 가족과 상봉하는 <어디갔어, 버나뎃>의 버나뎃은 자아를 찾고서 새로운 열망으로 현실세계로 귀환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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