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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Nov 26. 2021

단편영화 <Curve>에 대한 단상

- 당신은 지금 추락하지 않고 제대로 버텨내고 있는지요?

   러닝 타임 9분 51초. <Curve>를 보는 순간 자신의 몸이 천 길 벼랑에 매달린 듯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집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을 주고, 손과 다리로 버텨내려고 애를 씁니다. 몰입하는 것을 뛰어넘어 거대한 곡면의 끝에 마치 자신이 누워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한마디의 대사도 없이 장면과 사운드만으로 공포와 전율에 빠져들게 합니다. 지옥순례는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되죠. 인간에게는 오감각이 있지만 <Curve>를 보게 되면 공포심도 분명 독립된 하나의 감각이란 걸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거대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거대한 파도와 클로즈업된 여자의 얼굴과 손, 다시 산더미 같은 파도와 여자의 얼굴과 신발을 계속 교차편집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자가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뜹니다. 이때 풀 샷으로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은 곡면의 끝에 왼쪽 다리가 꺾여 누워있는 여자를 보여줍니다. 정신을 번쩍 차리는 여자. 그러나 바로 살짝 미끄러지면서 아래로 몸이 쏠립니다. 천 길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바닥을 힘겹게 잡고 버텨냅니다. 곡면 끝으로는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여자는 거친 호흡을 내몰아 쉬면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온몸과 두 손에 힘을 주고 밀어 올립니다. 사방은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나갈 수 있는 출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추락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여자는 천천히 다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위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지 않게 버텨내는 것뿐. 

  여자는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떨어지지 않게 다시 자세를 취합니다. 오른쪽 다리를 굽혀 바닥에 신발을 밀착시키고, 양손도 바닥에 바짝 붙여서 온몸을 위로 올려봅니다. 그렇게 애써보지만 몸이 아래로 쓱 미끄러지고, 간신히 지탱합니다. 위를 올려다보지만 회색빛 하늘과 사방의 콘크리트 벽면뿐입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양손을 콘크리트 바닥에 대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피가 흥건합니다. 그렇게 피가 묻은 손을 들여다보는 두 눈에서는 여러 감정들이 들끓습니다. 피 묻은 손을 들여다볼 때 맞은편 벽면에 누군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자신과 똑같이 애를 쓴 흔적이 핏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거기다 누군가 아득한 어둠 속으로 떨어지면서 지르는 비명 소리도 들려오기도 합니다. 

  선명한 핏자국과 함께 연이어 들려오는 추락하는 비명소리.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어떻게든 미끄러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양손을 바닥에 밀착시켜 온몸을 위로 밀어 올려 버텨냅니다. 그렇게 애쓰고 있을 때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 묻은 손으로 받아봅니다. 그리고 다시 의지를 불사릅니다. 목걸이를 풀어 오른손에 감습니다. 눈이 올 때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바퀴에 체인을 거는 것처럼 손에 목걸이를 감고 힘을 주는 겁니다.   

   여자가 온 힘을 주는 소리와 함께 페이드아웃. 

  그리고 천둥이 치고, 빗소리의 사운드만 들려옵니다. 

  곡선의 끝에 매달려 있던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엔딩 크레딧.      



  인간이 생명체로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생존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 적지 않습니다. 어려움은 기습적으로 찾아옵니다. 운명이든 우연이든 찾아오기 마련이죠. 첫 장면에서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는 인간이 숙명적으로 맞닥뜨리는 난관이며 고난입니다. 병, 죽음, 가난, 이별, 슬픔, 영적 체험, 육체적 고통, 허무, 좌절 등등 수없이 많죠. 그러니까 고난의 극복은 삶의 궤도를 지탱해내는 데 있어서 치러야 하는 비용 같은 거겠죠. 죽은 자는 어떤 비용도 치르지 않습니다. 치를 필요가 없죠. 산 자가 난관을 극복하는 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납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어떠한 죽음도 대신해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견뎌내야 하는 건 인간의 운명입니다. 견뎌내더라도 그게 반드시 행복을 담보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평생 불행 속에서 헤매다 마침표를 찍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견뎌내는 노력이야말로 인간이 숭고한 몸짓입니다. 그러한 숭고한 몸짓에서 인류의 위대한 문화가 창조되었고,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영화에서도 여자가 어둠 속으로 추락했는지 기적적으로 구조가 됐는지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그 여주인공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버텨낸 그 몸짓과 과정입니다. 그건 실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도 변함없이 침대에서 무사히 일어난 당신에게 어느 한순간 기습적으로 고난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코로나 19에 감염이 돼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도 있죠.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신에 대한 회의 때문에 어둠 속에서 이미 추락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테죠.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연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힘들더라도 견뎌내십시오.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어줍지 않은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겠습니다. 그건 말로 고난을 희롱하는 것일 뿐. 당신이 할 수 있을 만큼 버티고 견뎌내십시오. 그리하면 그 의지가 오히려 고난을 가볍게 하는 역설의 기적을 이루어내기도 합니다. 혹 실패하더라도 그건 인간의 위대한 파멸이 되겠죠. 


  지금 나 자신만 외톨이가 돼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분들. 

  신은 언제나 내편이 아니라는 피해의식이 있는 분들. 

  세상이 온통 행복한 소음 속에 빠져 있는데 자신 혼자만 내팽개쳐졌다고 생각하는 분들.

  유튜브에서 단편영화 Curve를 치고, 고난과 공포의 순례를 함께 해보십시오. 끔찍하고 극한의 두려움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빛으로 다가오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바로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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