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하마 May 18. 2022

영화 <래리 플린트>를 보고

- 속물을 보호한다면 모두가 보호받는다!

 


  <래리 플린트>는 체코 출신의 밀로스 포먼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밀로스 포먼 감독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아마데우스>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죠. 또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잭 니콜슨은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아마데우스>에서는 저주받은 보통사람의 챔피언 살리에르 역을 맡은 F. 머레이 아브라함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밀로스 포먼의 반전 영화로는 <헤어>도 빼놓을 수 없죠. 정말 멋진 영화입니다.  

  <래리 플린트>는 포르노 잡지인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보다 훨씬 하드 코어적인 ‘허슬러’를 출판한 실존 인물 래리 플린트를 그린 영화입니다.

  래리는 어릴 때 워낙 가난해 동생 지미와 밀주를 만들어 팔다가 성인이 되어선 스트립 댄서가 있는 클럽을 차리게 되죠. 관능적인 여자들이 무대에서 섹시한 춤을 추는 그야말로 천국에 가까운 클럽을 세상에 알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홀랑 벗은 여자를 보여주는 잡지 ‘허슬러’를 창간하게 됩니다. 래리(우디 해럴슨)가 동생 지미(브렛 해럴슨)와 함께 출판 사업에 뛰어든 거죠.  



  특히 래리란 인물은 독특합니다. 여성편력이 엄청나 자신의 소중이를 잠시도 쉬게 놔두질 않죠. 클럽의 스트립 댄서는 모두 그와 섹스를 하는 게 옵션일 정도였으니까요. 래리는 직업을 구하러 클럽에 온 앨시아(코트니 러브)와 바로 섹스를 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죠. 그런데 야심을 가지고 발행한 ‘허슬러’의 판매실적은 영 신통치 않습니다. 반품이 늘어나고, 적자에 시달리게 되죠. 그러던  중 이탈리아 파파라치로부터 제공받은 재클린 오나시스의 전라 사진을 잡지에 실은 뒤로는 점잖은 주지사까지 슬며시 사서 볼 정도로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게 됩니다. 전용 비행기를 타고, 호화 주택에서 룰루랄라  인생을 살게 되죠.  

  호사다마랄까. 잘 나가던 래리는 풍속을 해치는 잡지를 간행한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이때 변호사 앨런(에드워드 노튼)을 만나게 됩니다. 래리는 재판을 받는 도중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법정을 모독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가 재판을 받은 뒤 유명인이 돼 출판 자유 수호 연합회 주관으로 열리는 모임에 초청을 받아 연설을 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살인은 불법이지만 살인 현장을 찍어서 뉴스위크 표지에 터뜨리면 퓰리처상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섹스는 합법이죠. 누구나 즐기는 걸 원하지 않나요? 그러나 성행위를 찍거나 여자의 누드를 찍으면 감옥에 쳐 넣습니다. 가슴과 음부가 외설스럽다고 말하는 착하고 도덕적인 종교인들에게 충고하죠. 내게 불평하지 마시고, 창조주에게 불평하시오. 주는  심판하지 말라 하셨지만 하려면 똑바로 해야죠.”

  법정에서 앨런이 래리를 변호하는 것도 표현과 선택의 자유였습니다. 이렇게 변호를 펼치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래리 플린트 씨의 사업을 좋아해 달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도 싫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단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허슬러’를 사서 읽거나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전 그 권리를 좋아하고, 존중합니다. 여러분도 존중하셔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국가에 사니까요. 말로는 잘하면서 가끔은 망각하고 있어요.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자유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자유를 하나씩 제약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많은 것에 제약을 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죠. 그건 자유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래리 플린트>의 서사적 절정은 래리가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제리 폴웰 목사를 캄파리 광고로 패러디한 게 소송에 걸려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핵심적 전언이 담겨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래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폴웰 목사가 그의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패러디 광고를 잡지에 싣습니다. 말도 안 되는 광고죠. 결국 명예훼손과 정신적 고통을 줬다는 혐의로 폴웰 목사로부터 4천만 불의 손해배상의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1심에서는 래리가 폴웰 목사에게 25만 불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지만 최종 대법원에서는 만장일치의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사랑하던 애인 앨시아가 죽고 쓸쓸하게 침대에 누워있던 래리에게 변호사 앨런이 전화로 판결문을 읽어주죠.

  “헌법 제1조는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존중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이며, 진리탐구를 위한 초석이고,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다.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전부 들어보기 위해 헌법 제1조가 존재한다.”      지금도 대법원의 허슬러 대 제리 폴웰의 재판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판례로 남아 있습니다. 비판이 대상에 대한 증오나 악의에서 비롯되었더라도 허용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비판의 동기를 문제 삼아 불이익을 준다면 토론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게 판결문의 핵심입니다. 그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인의 기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내린 게 1988년인데 그때의 한국 정치상황을 떠올려보면 꿈같은 판결이죠. 88 올림픽이 열렸지만 거리는 전경들이 즐비했고, 대학가든 종로든 최루 가스는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었으니까요.



  <래리 플린트>에 시선이 가는 장면들

  1. 리 역할을 맡은 우디 해럴슨의 연기는 압권입니다. 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억지를 부리지 않는 액션과 눈빛은 래리가 살아온 서사를 정확하게 표현한 거라고 할 수 있죠. 래리의 동생인 지미 역을 맡은 브렛 해럴슨은 우디 해럴슨의 친동생입니다. 영화처럼 실제 동생이었던 거죠.  



  2. 래리의 연인 앨시아 역할을 맡은 코트니 러브의 광기의 연기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입니다. 코트니 러브는 록 밴드 너바나의 리드 보컬인 커트 코베인의 부인이었죠. 앨시아가 조금은 데카당스 한 아우라를 풍기며 클럽에 들어와 래리를 만나게 되고, 사랑을 하고, 약물에 서서히 중독되다가 에이즈에 감염이 되어 냉대를 받고, 결국에는 광기를 보이다가 욕조에 빠져 비극적으로 죽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죽은 앨시아를 붙들고 절규하는 우디 해럴슨의 연기는 화면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보았을 때 코트니 러브가 정말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는데요, 커트 코베인은 왜 자살을 했을까요? 그것도 엽총으로 머리를 쏜 어네스트 헤밍웨이처럼요.

3. 래리가 출판 자유 수호 연합회 주관으로 열리는 모임에 초청을 받아 무대에 올라서 연설을 하는 내용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합니다. 인류가 벌이는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비참한 현실을 성적인 장면들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정말 어떤 게 추한 거냐고 묻죠. 생각해보면 인류를 대량학살을 한 건 전쟁이었지 인간의 섹스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4. ‘허슬러’가 지향한 색다른 취향이 요즘은 거의 고전이 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습니다. 종교와 포르노의 교접이란 컨셉 자체가 뜨악하죠.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섹스를 하고, 산타클로스가 달아오른 자신의 소중이를 만지면서 아내에게 ‘내꺼 크지?’라고 묻는 대사에는 나 자신도 모르게 도덕적 방어기제를 펼치게 됩니다. 와아, 선 넘었다.

5. 래리와 앨시아가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침실 아니면 욕실입니다. 프러포즈도 욕실에서 하죠. 거의 벗고 있는 상태고, 그건 섹스를 통해 억눌린 자아를 완전 해방시킨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섹스는 사랑이었다가 어떤 사람한테는 상품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한테는 폭력이기도 하죠. 또 어떤 사람은 중독도 됩니다. 그건 병이죠. 결국 섹스는 섹스 자체가 정의를 내리기보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한테 달려 있다고 봅니다.  

6. 대법원에서 만장일치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변호사 앨런이 래리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려줄 때 침대에 누워있는 래리를 보여주다가 카메라가 천천히 팬 하면서 집안 곳곳을 보여줍니다. 앨시아가 있었을 때는 화려하고, 생기가 있었지만 래리 혼자 남은 거대한 저택은 거의 폐가처럼 낡아갑니다. 그게 인생이라는 듯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사족 : 언론계와 법조계에 있는 분들은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킹메이커> 대 <킹메이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