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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May 04. 2022

영화 <킹메이커> 대 <킹메이커>

- 변성현 감독과 조지 클루니 감독의 같은 듯하면서 다른

  

  정치적인 영화는 대중에게 친화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영역 자체가 냉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정치하면 권력과 배신이 떠오르고, 정치는 추악한 사람들이 벌이는 쇼 비즈니스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그렇다 보니 정치인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잘 만들어봤자 본전인 셈입니다. 계몽적 메시지든 폭로의 스토리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정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영화적 메시지를 공유하고, 거기다 감동까지 주는 이야기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최근에 정치적인 인물을 다룬 영화 두 편을 보았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2021년)>와 조지 클루니 감독의 <킹메이커(2011년)>입니다.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의 원제는 <The Ides of March>인데 3월 15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 날이고, 이는 정치적으로 ‘흉조가 있는 날’이라는 의미이면서 ‘흉사를 경계하라’는 경고의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와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는 같으면서 조금은 다른 스토리의 영화입니다.

  첫째,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영화를 보면 금방 김대중과 당대 모사꾼이었던 엄경록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김영삼, 이철승, 유진산 같은 정치가들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6~70년대의 정치사의 주역 인물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허구를 슬쩍 얹은 팩션인 셈이죠. 이에 반해서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를 보면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가 떠오르긴 하지만 미국의 실제 대통령을 모델로 했는지는 모호합니다. 미국 정치계에 떠도는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쓴 희곡이 원작이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인물로 딱 대응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순수 픽션에 가깝습니다.


  둘째, 인물의 구도에서 보면 김운범(설경구)과 서창대(이선균)는 모리스(조지 클루니)와 스티븐(라이언 고슬링)이 비교됩니다. 서창대나 스티븐은 대통령 만들기라는 목표가 같습니다.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것도 똑같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은 어떨까요? 서창대는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신념이나 정의감에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한풀이와 동물적인 열정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김운범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는 기능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운범은 비록 네거티브 전략을 써서 국회의원이 되고, 야당 대통령 후보도 되지만 그의 정치적 대의명분은 민주주의 정신입니다. 김운범이 서창대에게 말하는 대사에 그런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근본까지 까먹지 마시게.”

  “이 자리가 무슨 지분 나눠먹자고 앉아 있는 자리 같은가?”

  “자네는 준비가 안 된 게 아니고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 절대로.”

  결국 김운범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대통령 후보까지 만드는데 수훈갑이었지만 정치적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앞에서는 그림자가 더 이상의 쓸모는 없죠. 신념과 비전으로 함께 하는 정치적 동지가 아니라 서로의 욕망을 해소하는 기능적 관계의 파탄은 한국 정치의 서글픔과 비루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풍토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김운범은 극적인 캐릭터를 뛰어넘어 민주적인 인물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결국 메이커로서 서창대는 킹인 김운범을  빛나게 하는 기능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은 셈이죠. 물론 변성현 감독은 진정한 킹메이커는 김운범도, 서창대도 아닌 위대한 국민이었다는 걸 모범답안처럼 슬쩍 내밉니다. 그게 국뽕 아닌 듯 국뽕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서창대에 비해 스티븐의 욕망은 매우 치밀하고, 집요합니다. 스티븐은 자신을 구렁에 빠뜨린 선거사무장인 폴(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오히려 선거 캠프에서 내쫓는 과정이 리얼하게 와닿습니다. 개인의 욕망들이 부딪치고, 꺾이는 게 아주 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스티븐은 미녀 인인 몰리와 잠자리를 하고 난 뒤, 모리스도 몰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 비밀을 히든카드로 쥐고, 모리스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선택이 아니라 협박이죠. 결국 모리스는 폴을 내치고, 스티븐에게 선거를 맡기게 되죠. 욕망으로 인한 저질의 밑바닥이 다 드러납니다. 정치적 신념과 비전의 베일을 걷어내면 개인의 정치적 욕망들이 관계를 만들고, 그 동력으로 정치가 움직인다는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정치에 대한 냉소나 혐오가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결국 인간의 정치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은 킹인 모리스보다 메이커로서의 스티븐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모리스보다 스티븐에게 극적 흥미가 끌리는 건 드라마적으로도 자연스럽고, 그만큼 감득도 됩니다.  



  셋째, 두 영화 모두, 시작과 끝을 수미상관의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변성현 감독은 달걀의 에피소드를 알레고리로 사용했고, 조지 클루니 감독은 선거사무실로 미모의 여자 인턴이 캐리어에 커피를 가지고 오는 장면을 썼죠. 달걀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상대를 꺾고 자신을 지켜내야 할 전략의 상징 같은 것이라면 미녀 인턴의 등장은 인간의 성적 욕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와 섹스는 필연적인 관계라는 것이겠죠. 달걀을 훔쳐가는 도둑에 대한 대응방식이 다른 김운범과 서창대는 관계의 파탄으로 정리되지만 새로운 미녀 인턴인 모리스가 처음 몰리처럼 등장하는 건 언제나 끝없이 이어진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넷째, 두 영화 모두, 조명의 명암을 사용해서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변성현 감독은 마치 빛의 마술사 같기도 하고, 고도의 상징 이미지를 구사하는 시인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김운범은 밝은 빛으로, 서창대는 그야말로 어두운 그림자의 조명을 사용해 미장센의 효과를 극대화시켰습니다. 또 이실장(조우진)이 서창대를 찾아와 대화하는 장면과 전당대회에서 이한상(이해영)과 막판 딜을 하는 장면에서도 어두운 조명을 사용한 건 정치적 음모와 암약에 대한 상징이겠죠. 하지만 조명의 명암을 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이해는 됐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 피로감이 왔습니다. 낫을 너무 갈아 한쪽으로 치우진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서 조지 클루니 감독은 어두운 조명으로 스티븐의 내적 심리를 표현한 마지막 장면 정도입니다. 욕망과 음모를 드러내는 카메라의 앵글도 기교를 부리지 않고, 지나치게 평면적입니다. 그만큼 가식 없이 솔직하게 까발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긴 정치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불편한 진실이니까요.


  다섯째,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을 확보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김운범이 극적으로 야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이나 모리스가 톰슨 의원(제프리 라이트)과 딜을 하는 장면은 영화라기보다는 정치 야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치적인 거래를 하는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여섯째, 영화가 다 끝난 뒤 머리에 남는 인물은 김운범과 스티븐입니다. 서사를 이끌어온 인물인 서창대는 지워지고, 김운범은 모범답안의 모델이 됩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정의롭고, 사람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뚫고 민주주의의 신념을 지킨 김운범은 극적인 캐릭터를 뛰어넘어 신화적 인물이 되고, 역사적 비전을 제시하는 영웅적 인물이 됩니다. 그에 반해 스티븐은 여전히 개인적 욕망을 지닌 채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가는 인물이 됩니다. 백악관으로 들어가 보좌관이 되든 아니면 컨설팅회사로 가든 그는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 되죠. 한국의 정치에서도 스티븐 같은 인물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키에르케고르적인 고민이 떠올랐습니다. 미학적 표현방식으로 존재를 향유할 것인가 아니면 윤리적 표현방식으로 존재를 실현할 것인가. 조지 클루니의 경우는 전자에 가깝고, 변성현 감독은 후자에 속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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