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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pr 27. 2022

고물 피아노의 마지막 연주

- 슬픔을 넘어 감동으로 남은 죽음

 


  누군가 이사를 가면서 버린 피아노. 수명을 다하고 이젠 폐기처분의 처지가 됐습니다. 폐가구나 폐가전제품은 동사무소에 신고한 뒤, 스티커를 구매해서 붙여야 하는데 그 돈마저 아까웠는지 피아노를 그냥 버리고 갔습니다. 한때는 누군가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체르니를 쳤을 테고, 누군가는 쇼팽의 녹턴을 쳤을지도 모르죠. 다 지나간 과거가 됐습니다. 쓸모가 다하면 버림을 받는 건 물건이나 사람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버려진 피아노. 돈이 되지 않는지 고물 장사도 그냥 지나쳐버린 고물 피아노.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그 곁은 지나가다가 피아노 앞에 앉아 뚜껑을 열고,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였습니다. 고물 피아노도 그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라는 걸 알았는지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소년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피아노 소리에 이끌린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고물 피아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게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폐기처분을 앞둔 고물 피아노의 마지막 콘서트였죠. 고물 피아노는 곧 버려질지언정 사람들에게 감동의 소리를 선사했습니다. 고물 피아노는 마지막 종착지는 폐품 처리장이었지만 자신이 피아노로 태어난 건 꽤 괜찮은 삶이었다는 듯 더욱 명랑한 소리를 냈습니다. 고물 피아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감동에 빠진 표정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피아노들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그리고 버려집니다. 번듯한 연주회는커녕 소음 같은 소리만 내다가 사라지는 피아노들도 적지 않겠죠. 



  고물 피아노의 마지막 콘서트가 감동을 주었듯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 동네 혜선이 할머니도 작은 감동을 남겨주었습니다. 허리가 바싹 꼬부라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버스정류장 화단에 모종을 했는데 거기서 꽃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그 꽃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나셨죠. 그런데 당신께서 꽃을 보려는 욕심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위대한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고, 빛나는 서사시로 남은 인생이 아닐지라도 잔잔한 향기를 남겨준 당신의 인생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봄볕이 쏟아지는 뜨락에서 시간을 들여야 감정도 배양이 되고, 숙성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갑니다. 늦게 오는 깨달음에는 부끄러움이 묻어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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