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나

by 참읽기

엄마들끼리 그림을 그리는 모임에 들어있다. 카톡에 그림 올리면서 나누는 가벼운 모임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로망이 있어서다. 옆에서 보다 보면 나도 한 장쯤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연필만으로도 기막힌 표현을 해내는 거에 비해, 내 그림은 영 어설프다. 어딘가 완성되지 않는 느낌.



오프라인 모임이 있던 날 주최한 작가님에게 물어봤다. 내 그림은 왜 이렇게 마무리가 되지 않는 거냐고. 그림을 훑어보던 그분이 말했다.

"강약을 줘보세요. 연필 선부터요."

그제야 보인다. 작가님의 선은 굵기가 다양한 반면 내 선은 죄다 흐리고 가느다랗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몇 년 간 여기저기 쓰던 글을 정리해서 작년부터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데 내 글이 어떤지 궁금했다. 글쓰기 코치님께 그동안 써온 글을 모아서 보여드렸다. 쓴소리, 단 소리 어떤 소리든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코치님의 말.

"좀 더 진하게 써보세요."

무슨 소리지? 구조가 어설퍼요, 의미가 불분명해요, 완성도가 떨어져요 도 아니고 더 진하게 쓰라니?



글에 좋은 점이 많단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연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더 확 와닿게 쓰라고 했다. 나는 연필선도 글도 진하게 쓰지 않는다. 실수하느니 있는 듯 없는 듯 숨어버린다. 어디서 온 걸까?



생각의 끝에는 엄마와 남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누가 이길 것 없이 고집이 세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이 정해져 있고 그 밖으로 벗어나는 걸 견디지 못했다. 싱크대 수세미는 비누칠용, 헹굼용, 생선접시용, 청소용으로 4개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너절한 수세미가 싫어 하나라도 치웠다간 지지부진한 싸움 끝에 엄마 말대로 해야 상황이 끝났다.



남편은 심지가 곧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혼자 갖고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소리를 내면 정말 큰 싸움이 된다. 나는 어떤 상황에도 할 수 있는 하나의 말을 마련해 두었다.

"하하, 그러게..."



나는 분명 타고난 활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궁금한 게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나만 소리 낮추면 돼'

눌러버렸다. 여기는 약간 쪼그라들고 저기는 약간 삐져나온 존재가 되었다.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입술을 밀랍으로 봉하고 손가락을 촛농으로 굳혀도 하고 싶은 말은 굴러와서 끝내 가슴에 맺혔다. 눌러진 존재는 연필 선에, 낱말 속에 흘러나왔다. 펼치고 싶다고.



오프라인 그림 모임을 마무리하고 나오려는데 한 엄마가 연필을 건넸다.

"B연필인데 진하게 더 잘 그어질 거예요."

집에 와서 그려봤다. 다 진하니 의미가 없어졌다. 진해야 할 곳이 옅고, 옅어야 할 데가 진하면 어색했다. 진할 곳은 진하고 옅을 곳은 옅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래 들여다봐야 했다. 빛을, 색을, 그림자를.



글을 쓴다. 불편한 질문 앞에 서서 엄마 얘기를 꺼내고 남편 얘기를 적고야 만다. 그러려고 한없이 들여다본다. 상황을, 생각을, 느낌을.



글 안에서 진해지기 시작한다.



[미루글방에서 나누며 쓴 글입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5화열음과 맺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