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봄

벚꽃

by 참읽기


봄을 알아본 건 스무 살이었다. 대학에 적응한 지 한 달쯤 지나 여느 날처럼 캠퍼스에 들어섰다. 하얀 벚꽃이 다글다글 붙어 곧 펑펑 내릴 기세로 길을 메웠다. 며칠 뒤 정말 눈처럼 내렸다. 날리며 내려오는 꽃잎이 꼭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 같았다. 그런 걸, 봄이라는 걸 처음 봤다.

그 후로 벚꽃을 보아야 봄이 온 것이라며 매해 근처 명소를 찾아갔다. 석촌호수에 하염없이 앉아 있고, 양재천을 남편 손잡고 걷고, 아차산 뒷길을 차 타고 지나갔고, 삼익그린 아파트 단지를 유모차 끌고 걸었다. 스무 해 넘게 간 곳을 또 가도 매해 봄을 맞는 게 황송했다.

벚꽃과 조우한 지 스물다섯 해째, 이상하게 겨울의 스산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SNS마다 하얀 팝콘꽃이 휴대폰을 뚫고 나올 듯한데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왜 벚꽃을 좋아한다면서 진해 군항제도 한 번 안 가봤나? 내가 정말 좋아하기는 하는 건가? 내 몰입은 이다지도 얕을까?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지. 그해 처음으로 기다리지 않았다. ‘벚꽃 보러 가자’ 몇 번을 말해도 시큰둥하니 남편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다음 해, 나는 몸을 낮춰 들꽃을 사진 찍고, 철쭉을 칭송하는 글을 썼다. 날려 사라지는 벚꽃보다 우직하게 봄을 지키는 철쭉을 바라보겠노라고.

나는 좋아하는 마음조차 우등이고 싶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평균이라도 되고 싶었다. 벚꽃 때문이 아니었다. 철쭉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뭔가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는, 덕후가 되지 못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진해에 가서 성덕을 인증하고 싶은데 그만큼 열정은 없는 간극이 미웠다. 벚꽃을 보지 않은 두 해 동안 나는 ‘이만한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려 애썼다. 그때그때 마음에 만족하기. 우등이 되려는, 평균이라도 돼 보려는 트랙에서 벗어나 나로 살기. 순간순간 나를 줄 세우는 습관을 완전히 없애는 건 쉽지 않았지만, ‘이만해도 된다’ 계속 되뇌었다.

올해가 되었다. 3월이 시작하자 빨긋빨긋 올라온 몽우리들을 보며 나는 벌써 몸이 단다. 다시 기다리고 있구나. 진해까지는 못 가도,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한 아름 눈과 마음에 담을 거다. 펼쳐지는 환희를, 내려오는 축복을, 흩날리는 가장 여린 봄을, 내가 사랑하는 벚꽃을.



[미루글방]에서 주신 글감으로 글을 썼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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