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죽여서 구분 짓는다
<기생충> 봉준호
"이런 데서도 살아지나?"
지하 벙커를 둘러본 기택이 근세에게 묻는다.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반지하까지 따지면 더 많지."
기택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근세는 대답한다.
기택은 반지하에 사는 자신과 지하에 사는 근세를 구분 지은 채 물었다. 그러나 근세는 지하나 반지하나 똑같이 땅 밑이라고 말하며 구분을 허문다.
"당신 계획도 없지?"
기택은 근세에게 묻는다. 계획의 유무를 기준으로 근세와 자신을 분리한다.
기택은 근세보다 조금이나마 높은 위치에 놓여있다. 위에 있는 기택은 아래에 있는 근세와 자신을 구분 지으려고 하는 반면 근세는 그 구분을 허무려고 한다. 이렇듯 영화는 구분 지으려는 인물과 구분을 허무려는 인물 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보여준다.
특히 기택 일가와 근세 일가의 공방전을 주로 보여준다. 구분 짓기 힘들 만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고, 그래서 더 치열하고 주도권이 양쪽 진영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같은 불우이웃끼리."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충숙에게 문광이 말한다.
"우린 불우이웃 아니야."
충숙은 불쾌해하며 대답한다.
기택 가족의 위장 취업이 발각되어 주도권이 근세와 문광에게 넘어가자 상황은 달라진다.
"남궁현자 선생님의 예술혼이 숨어있는 집에서 술이나 처먹냐. 무식한 것들아 니들이 예술을 알아?" - 문광
"저분들이 뭘 알겠어." - 근세
예술에 대한 안목을 기준으로 기택 가족과 자신들을 구분 짓는다.
치고박는 공방전이 무색하게 감독은 그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임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똑같이 대만 카스텔라 사업을 하다 망한 기택과 근세. 똑같이 네발로 계단을 기어올라가는 기우와 근세. 쫓기는 신세로 지하실에 들어가는 기택과 근세. 관객의 눈에 그들은 똑같다. 기택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을 느끼지만 애써 부정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야.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
근세 일가에게 위장 취업을 들키고 반지하가 침수된 날 기택은 말한다. 계획으로 근세와 자신을 분리했던 기택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택이 계획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다음 날에도 출근을 하며 계획을 이어간다. 계획이 완전히 무너진 순간은 동익이 근세를 치우다 코를 막은 순간이다. 기택은 동익을 죽이고 근세와 완벽하게 같아진다.
기택은 동익을 왜 죽였을까?
기택은 동익과의 구분을 허물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그래도 사랑하시죠?" - 기택
"애 많이 쓰시네요, 대표님도. 하긴 뭐 어쩝니까, 사랑하시는데." - 동익
기택은 보편적인 감정인 아내에 대한 사랑을 통해 동익에게 감정 교류를 시도해 왔다. 구분을 허물기 위해서다.
"김기사님, 어차피 오늘 근무인 거죠 이게? 그냥 뭐 이게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러나 동익은 이러한 감정 교류를 차단하며 구분 짓는다.
처음엔 동익이 선을 그어서 죽였다고 생각했다. 동익이 기택을 아래로 봐서 감정 교류를 불쾌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정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은 동익의 개인적인 가정사 문제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살인의 트리거가 됐던 냄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지하 벙커에 살던 근세와 집이 침수되어 수재민이 모인 체육관에서 잔 기택에겐 악취가 났을 것이다. 동익이 코를 막은 것은 상대에 대한 하대에서 나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듯 영화를 다시 볼수록 동익의 감정은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느꼈다. 중요한 건 기택의 감정이다.
얼굴 클로즈업이 유난히 많았던 기택.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 제일 쉽게 설정된 인물이다. 기택은 근세와 자신을 구분 짓고 싶었다. 영화 내내 계획에 집착했던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사실 기택과 근세가 다를 바 없다는 치부를 드러낸 동익을 죽인 것이다. 딸을 찌른 근세를 놔두고 동익을 죽일 만큼 기택은 자신이 싫었다. 기택은 거울을 깬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화의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다고 한다. 가난한 기택 가족과 대칭적으로 부유한 동익 가족을 나타내는 제목이다. 데칼코마니는 일반적으로 대칭적인 것을 표현할 때 쓰지만, 이는 거울처럼 똑같은 대상을 반대로 비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기택·근세와 그 거울을 깨버리는 기택을 잘 표현하는 가제다. 또한 동익과 기택의 대칭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택과 근세의 유사성도 보여주는 영화의 내용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내가 부자였으면, 난 더 착했어" - 충숙
데칼코마니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옮긴다는 뜻이다. 대칭적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결국 똑같은 것을 뒤집어서 옮겨놨을 뿐이다. 동익의 2층 집과 기택·근세의 반지하는 지면을 기준으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본질적으로 똑같은 사람을 이 데칼코마니 공간에 배치하면 이렇게 대칭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