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주동인물이 주는 힘은 무섭다. 주동인물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와 별개로 관객은 주동인물에게 감정 이입하여 영화를 보게 된다. 이 영화의 죄수들은 다 사형수들인데도 이들의 감정에 이입해서 보게 되는 것이 그 예시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당시와, 사형 선고를 받고 그린 마일을 걷는 시점의 간극이 사형수와 그들을 지켜보는 폴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방화와 성범죄를 저지른 죄수가 사형을 당한다.'라고 하면 전혀 슬프지 않지만, 영화 속 델의 죽음은 왜 이리 슬플까? 델의 사형 장면에서 이런 고민이 들 때쯤 참관하러 온 유가족들은 "그가 지옥에 가리란 것을 본인도 알겠지"라고 말한다. 유족을 보자 관객은, 그래, 모범수인 델도 사형을 당할 만한 죄를 저질렀겠지, 깨닫는다. 혼란스럽다. 그는 죄인이다. 그의 죽음은 슬프다. 슬퍼해도 될까? 왜 슬플까?
주인공 폴의 직업은 사형수를 그린 마일을 거쳐 전기의자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의 시점에서 보면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참혹한 범죄 현장을 보고 범인을 검거한 형사도, 가족이 피해자인 유가족도, 사형 선고를 내리는 명망 있는 판사도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 관객이 가장 이입하여 보는 인물에게 중요한 것, 즉 관객의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형수의 범죄 이력이 아닌 사형수가 그린 마일을 걸어 전기의자로 가는 마지막 모습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폴은, 관객은 슬퍼할 수 있다. 우리가 본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델의 모습이 아닌, 모범수로 지내고 죄를 뉘우치는 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저 마지막 모습일 뿐이니까.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에 따르면 델의 죄목은 방화와 성범죄라고 한다. 감독이 영화에선 델의 죄목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 같다.
스펀지에 물을 적시지 않아 고통스럽게 타 죽어가는 델을 보고 참관인들은 도망친다. 그들의 감정이 어쩌면 관객의 감정 아닐까. 죽어라 미워해도 눈앞의 참혹한 장면은 마음 한편에 불쾌함을 남긴다. 여기서 참관인들이 그래, 고통스럽게 가는구나 좋다! 이런 생각하진 않을 거다. 청불 등급을 받으면서까지 델의 사형 장면의 세세한 전달을 고집한 이유는 관객에게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범죄로 인한 유가족의 슬픔이라면? 주인공은 퍼시와 유가족이고, 청불 등급을 받은 원인은 델의 사형 장면 묘사가 아닌 델이 범죄를 저지르는 잔혹한 장면의 묘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형수의 모습으로 표현한, 모든 인간이 겪는 그린 마일이다. 제유법이라고 볼 수 있다.
퍼시가 악역으로 나온다. 만약 사형수들의 범죄가 묘사되었다면, 관객 중 누구도 그를 악역으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병원에 입원해버린 그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도덕적 딜레마를 관객에게 느끼게 해서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엔 진짜 선한, 죄책감 없이 이입할 수 있는 존 커피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잔인하지만 따스한 영화이다. 선인의 사형 장면엔 고통스러운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전기에 구워지는 죄수가 아닌, 폴의 슬퍼하는 얼굴을 비춘다. 눈물 흘리는 교도소 직원들의 얼굴을 비춘다. 델의 사형 장면에서도 그렇듯 여기서도 유가족이 존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델의 경우엔 유족의 마음에 이입하게 됐다면, 이 장면에선 폴과 교도소 직원들에 이입하게 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예수의 뜻에 따라 그것을 막지 않고 슬퍼하기만 할 수밖에 없는 제자들, 예수에 돌을 던지는 대중들이 떠오른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존 커피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겠다.
"I think about all of us walking our own Green Mile, each in our own time." - 폴
약간의 신의 권능으로,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 길게 다른 사람들의 그린 마일을 지켜보며 사는 폴. 그는 특별한 사람처럼 묘사됐지만 누구나 그린 마일을 지켜보며 산다. 사형수의 그린 마일을 지켜보는 교도소 직원으로 시작해서, 은퇴 후 사랑하는 주변인들의 그린마일을 지켜보는 폴의 인생을 보여준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신이 생각나는 영화이다. 외로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