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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초희, 채련곡 – 열네 살 소녀의 마음

by 허독

허초희, 채련곡 – 열네 살 소녀의 마음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맑고 너른 가을 호수 옥이 되어 흐르는듯

蓮花深處繫蘭舟(연화심처계난주)
연꽃밭 깊숙한 곳에 난꽃 배 매어 두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임 만날까 물 건너로 연밥 던지곤

或被人知半日羞(혹피인지반일수)
누군가 보았을까 한나절 부끄러웠지.


(출처. 허경회. 취할 공자 버릴 공자 . 309쪽)




허초희는 허난설헌의 이름입니다. 지난 8월 31일 이곳에 허난설헌의 결혼 후의 상황에 대하여 “담 위에 떨어지는 살구꽃”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 있습니다. 이 글을 본 양천 허씨 후예 중 한 분인 절친께서 위의 시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허초희는 어릴 적에 이미 한문을 다 배웠고, 열네 살에 시집갔으니 저 글을 쓴 시기는 아마 열 두 살에서부터 열 네 살 정도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로 보나 허난설헌의 됨됨이로 보나 시집간 후에 저런 글을 썼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지요.


위 글을 읽어 본 후 다시 먼저 쓴 글을 읽어보면 가슴이 아립니다. 물가에서 연꽃을 따다가 멀리 던지며 앞날의 행복한 결혼 생활, 잘 생긴 낭군을 기대하던 작은 소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길래, 마음이 담장 위로 떨어지는 살구꽃같이 되었을까요?

알려진 이야기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건을 건너뛰어서 말하자면 그 남편이 임진란 때 의병장으로 출전하여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그나마 허난설헌의 불행을 조금 씼어 줍니다.


더 깊이 생각해 봅니다. 이쁘고 재주있는 작은 소녀가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 좋은 사회인 것은 틀림없겠지요. 그러자면 누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임진란 직전의 사회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며,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쁘고 똑똑한 이 땅의 소녀는 모두 자기 능력을 활짝 꽃 피워서 자기도 좋고, 남도 좋은 사회를 만드는 날이 끝없이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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