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이꽃. 정봉렬
-- 매일 시 쓰는 시인을 위하여
시란 무엇인지 알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국어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소개해 주신 책 조지훈의 ‘시의 원리’를 급하게 펴 보았던 때가 고등학교 삼학년 때였던가? 조지훈은 ‘시인은 미의 사제’라고 써 두었었다. 아름다움의 제단에서 사람들이 제사를 올릴 때에 그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말씀이었다. 당연, 그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오래 시간이 흐르고 성경책의 한 구절을 읽고는 조지훈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고린도 전서 14장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느니라.’ 그 뒤로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는 말들이 계속 나왔다. 내 생각으로는 방언을 시에 예언을 소설에 대입하면 꼭 들어맞았다. 시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하는 말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아울러, 조지훈이 ‘미의 사제’라고 한 말도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다.
정봉렬 시인은 오십 년도 더 지난 청춘 시절에 진달래꽃 피던 교정에서 만난 동기이다. 진작 서로가 시 쓰는 사람임을 알아보았건만 정작 깊이 있게 서로의 문학에 대해 말할 기회가 없었다. 늦기 전에 오늘 꼭 몇 자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 우리는 서로 늙어가고 있으므로.
정봉렬 시인은 매일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시를 잘 쓰려고 노력한다.’라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그는 매일 시를 쓴다. 바람이 불어도 쓰고, 비가 와도 쓴다. 시의 신에게 제사하는 그의 제단에는 향불이 끊이지 않는다. 늘 차가운 바람만 감도는 내 제사상과 구별 된다. 그의 신은 매일 흡족한 제사를 받는다. 매일 배부르게 먹고 살쪄간다. 제사를 마치고 나오는 그의 모습 또한 흡족하다. 매일 시를 쓰는 사람이 주변과 불화할 수 없으리라. 그의 주위는 늘 풍성하다는 말을 늘 듣는다.
그러면 그의 제사상에는 무엇이 올라가 있을까? 새로 나온 시집 “살살이꽃”을 모두 읽는다.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그는 그가 도달해야 할 곳의 그림을 늘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열렬한 성도가 매일 조금씩 낙원의 그림을 그리듯이. 모든 시가 ‘가다린다’는 말과 ‘그립다’라는 말로 꽉 차있다. 결코 지치지 않는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는 찾았다. 다음 시에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들 국 화
달빛에 젖은 길을
두 손 잡고 걸었었지
아득한 그리움이
꽃잎에 숨었었지
온몸을 감싸는 향기
꿈인가도 여겼지.
그리움의 대상과 드디어 만난 시인은 당연히 그리움이란 것을 볼 수 없다. 그것은 꽃잎 뒤에 숨는다. 어떤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구체적 실체는 사라지고 향기만 남는다. 그러나 두 손을 잡고 걷는다. 헤어지지 않는다. 이 대상을 열다섯 살 소년이 그리워하는 대상과 같은 것으로 상상한다면 평생을 매일 시를 쓰면서 살아온 시인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의 희망과 이상향이 이 시에 녹아있다.
나는 부럽다. 그의 시의 제단이 늘 따뜻하고 풍성한 것이, 나는 부끄럽다. 나의 제단이 늘 쓸쓸하고 차가운 것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