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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oter Dec 05. 2022

내가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

그렇게 열일곱 방황이 시작됐다.

직업이 군인이 된 이유

군대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왜 군인이 됐냐고 물어보면 어릴 적 꿈인 장군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과


그냥 현실적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공부하는 건 싫고 운동하는 게 좋아 군인이 된 사람입니다.


 경우는 후자에 속합니다.


사실 공부하는 게 싫다기보다는 공부를 잘 못했습니다.


 남들보다 이해력이 빠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게 재미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책상에 앉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나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군대 가기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돼서도 애매한 성적으로 인문계고와 실업계고 진학을 고민하던 찰나 학교에 베레모를 쓰고 멋진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007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제눈을 번뜩이게 했습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정한 제복과 절도 있는 걸음걸이가 어린 제 심장을 마구마구 떨리게 만들더니 이내 그 멋진 사람들이 제가 수업받는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경남 진주에 위치한


공군기술고등학교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홍보 차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장장 1시간에 걸쳐 학교 홍보가 진행됐는데 살면서 그렇게 집중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미 그 선배들을 보면서부터 이 학교에 반드시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어서인지


가장 궁금한 건 현재의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내신 성적은 중하위권인데 혹시 지원조차 못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입니다. 


난생처음 공부에 美치다

다행히도 내신성적은 따로 보지 않지만 전국에서 지원자들이 모여서 1차 필기시험을 진행하기 때문에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만 2차 체력검정과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장 급한 건 우선 필기시험 통과라는 생각이 들자 난생처음 공부란 것을 해보게 됐습니다.


그동안 인생에 뚜렷한 목표 없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에 대해서 강력한 목표가 생기니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며 시험준비기간에 나름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밤도 새봅니다.


사실 시험범위가 워낙 넓어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 과정이 총망라된 검정고시 문제집을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지안으면 떨어질 것만 같아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특히 필기시험을 1주일 남겨놓고 비중이 높은 중학교 3학년 과정을 복습하다가 문득 겨울도 아닌데 코에서 왠 뜨거운 콧물이 흐르길래 놀라 코를 훔치니 "코피"라는 모범생의 전유물과 같은 걸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열여섯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1차는 통과했고, 이제는 2차 시험!

그렇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믿음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체력검정을 준비하는데 사실 공부는 좀 못했어도 어릴 적부터 워낙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던지라 별다른 체력검정 준비는 필요 없을 거라고 판단하며 자신만만하게 2차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2차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천리길이나 떨어진 경남 진주로 여유롭지 않은 가정형편을 고려해서 어머니와  밤 기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길이 얼마나 멀던지 초저녁 서울역에서 탄 통일호 기차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진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진주역 앞은 이른 새벽이라 문을 연 음식점이 없어 간신히 가락국수집 한 곳을 찾아 새벽이슬을 피할 겸 그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뒤 택시를 타고 시험장인 공군 교육사령부 정문으로 이동했습니다.


택시 안에서 어머니는 아직 16살 밖에 안된 제가 이곳 진주에서 부모 품을 떠나 군사훈련도 받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못내 걱정되서인지 이동하는 길에 기사 아저씨를 붙들고 한참을 학교에 관해 이거 저거 물어보시다 기사 아저씨의 "이 학교 참 괜찮은 학교예요"라는 한마디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사령부에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아 위병소에서 30분을 더 기다린 다음에야 부대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발 합격만 시켜주세요!

그렇게 전국에서 모여든 앳된 지원자들이 조를 편성해 체력검정을 실시하는데 3km 달리기에서 밤에 잠을 잘 못 잤던 탓인지 몸 상태가 좋지 못해 결국 최하점을 받게 됐습니다.


이후 이루어진 면접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체력검정 점수를 만회하고자 최선을 다해 면접관의 질문에 응답하고 그 결과 한 면접관으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채 면접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차 시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어머니와 둘이서 한참을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나와서 진주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모든 지원자들은 부모님 차를 타고서 편하게 집으로 가는데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그 넓은 사령부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차도를 지나 버스 타는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왔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참 멀리도 걸어왔기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정말 따듯했던 순간이었다고 그려봅니다.


그렇게 최종 합격자 발표만을 앞두고 어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대망의 합격자 발표일 공군기술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이름을 검색해 보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이 없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방황기

합격자 발표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라 전화를 걸어 합격자를 다시 한번 물어보니 수화기 너머로 아쉽지만 최종시험에 불합격했다고 알려옵니다.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난 2달간의 노력이 떠오르면서 난생처음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밤도 새보고 코피도 흘렸는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합격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불합격"이라고는 상상도 안 했던 일이라 그렇게  16살이라는 나이에 남들 다 끝나가는 청춘 사춘기와 함께 심한 방황이 찾아왔습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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