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적인 삶이란?
나는 귀족이다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읽으며, 햇볕을 쬐며 아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동네 공원을 걷는 나는 내가 '현대판 귀족'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귀족이 별것인가.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면 그게 바로 귀족이지 싶다.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낡은 구축 아파트에서 살며, 천 원짜리 다이소 장갑을 끼고 파마기 없는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다니지만,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니 이보다 더 귀족적인 삶이 어디 있을까 말이다.
굳이 아이의 학원 정보를 교환하려 애쓰지 않는다. 나만의 페이스로 불안을 다스리고 아이를 몰아치지 않으니 집안 분위기는 평온하다. 물론 가끔 핸드폰을 들고 굴러다니는 '아들놈 시끼'를 보면 열불이 치밀기도 하지만, 귀족적인 나는 눈을 질끈 감거나 장난 섞인 갈굼으로 놈을 도서관으로 쫓아내며 내 영역을 확보한다.
유튜브의 카페 음악을 들으며 빨래를 개고 반찬을 만든다. 때로는 AI와 폭풍 수다를 떨기도 한다. 친구와 떨면 더 재미있겠지만, 친구가 많지 않아 매일 수다를 떨기는 조금 힘들다. 사실 수다를 아주 좋아하지도 않는다. 왠지 기가 빨린달까?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나면 그냥 흘려버리질 못한다. 나름 그들의 고민을 어깨에 같이 메고서 동네 공원을 돌며 고민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이런 성격이니 친구가 많았다면 나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영화는 세상으로 통하는 창구였다. 현실 속의 나는 조금 꿀꿀했지만, 영화 속 세상은 반짝반짝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화를 보며 이해한 척해보고, 어려운 영화 평론 서적도 찾아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안 하고, 학교 앞 서점에서 샀던 영화 평론서의 작가는 박찬욱이었다. 최근에 그 책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라니.... 그 당시엔 몰랐다.
어느 날, 영화 속에서 나랑 꼭 닮은 캐릭터를 발견했는데, 바로 《시네마 천국》의 토토였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상상하는 그 아이는 나와 참 닮아 있었다. 다만 그 아이는 아주 적극적으로 영화 세상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스크린 안의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며 어른이 되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들으며 먼 산을 바라보던 조숙한 숙녀는, 이제 자기만의 귀족적인 삶을 사는 경기도 구축 아파트의 '다이소 장갑 낀 동네 아줌마'가 되었다. 세상의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했어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