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육아관

나에게 육아란 무엇인가?

by 노정희

​나는 아이를 "작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지만, 다만 표현이 서툴고 경험이 부족한, 조금 미숙할 뿐인 동등한 사람 말이다.

​그래서 나의 육아관에는 몇 가지 '금기'가 있다.

아이를 무조건 가르쳐야 할 대상이나 훈육의 대상로만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 앞에서 아이를 깎아내려도 모를 거라 함부로 짐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내 교육관이다.

​비록 검증된 데이터는 없을지라도, 내 삶의 중심축인 육아를 이 철학 위에서 조심스레 정리해 보았다.

(각자의 가치관이 있으니, 내 방식이 정답이라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내가 반드시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명료하다.

안전, 폭력 금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


이 본질적인 가치 외의 것들은 아이가 사회와 학교, 친구 관계를 겪으며 스스로 터득할 몫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굳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나조차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며, 내 안에 언제나 정답이 있다고 생각 자체를 안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이만 먹었을 뿐, 여전히 미숙한 존재라서 그렇다.


​어제도 그랬다. 사소한 일에 순식간에 감정에 사로잡혀 무너졌다. 나도 그저 감정조절 못하는 나이만 많은 사람일 뿐이다.

그런 내가 감히 모든 순간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순간 개입하려 들기보다 한 발짝 물러나 아이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물론, 잘하고 있는지 문득문득 불안하기도 하다.ㅠㅠ)


​어느 날 박물관에서, 길거리에서부모와 아이의 모습에서 뭔가를 배운다. 부모는 성난 얼굴로 아이에게 감정을 쏟아낸다. 아이의 표정은 겁에 질렸거나, 혹은 딴생각하며 잔소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저 관계에서 아이가 진정 배울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 눈엔 지극히 비효율적인 스트레스의 순환과정으로 보였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며, 내 삶에 적용하려고 애를 써본다.


​아이도 옳고 그름을 안다. 다만 아직 '작은 사람'이기에 소소한 유혹에 조금 더 취약할 뿐이다. 부모가 아이의 뒤에서 든든하게 서 있을 때, 아이는 스스로를 더 신뢰하며 자제력을 길러갈 것이다. 이것은 학습의 영역이 아니라, 어쩌면 나에게는 '믿음의 영역'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가 소중한 아이를 향한 불안 때문에 매일매일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보호'라는 선의를 품은 통제는 때로 위험하다. 아이는 자기 영역이 침범당했음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부모의 선의 때문에 차마 거부하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의 판단력을 거두고 부모의 통제 안으로 순응해 버리기 쉬운 구조라서 위험하다고 나는 느낀다.


나는 믿고 싶고, 믿어줘야만 하며, 믿어야만 아이가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육아는 결국 아이의 손을 잡고 끄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걷는 뒷모습을 믿음으로 지켜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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