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그 소녀를 구했을까?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by 노정희


클레어 키건의 짧은 장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이 소설은 묘사가 아주 좋다. 마치 내가 아일랜드의 어느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바로 옆에서 주인공 빌 펄롱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도 든다.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주인공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학적으로는 꽤 교훈적이라는 느낌도 있어 살짝 불편했다.


이 작품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을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만든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한 역할을 한다. 동시에 또 다른 질문도 떠올랐다.


도덕적 용기를 현실의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주인공 빌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주인집 아주머니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성장한다.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그는 무사히 성인이 된다. 그리고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고, 다섯 딸과 아내를 위해 석탄을 배달하며 회사를 꾸려 간다.

어느 날 그는 동네 수녀원에 석탄을 납품하러 갔다가 창고에 갇혀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한다. 수녀원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도 이미 들은 상태다. 아이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른 척하고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맞는 일인지 그는 고민한다.

성실한 기독교 신자인 펄롱에게 그 고민은 더욱 불편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알면서 외면하는 일은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을 찌른다. 결국 그는 어느 날 성탄절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그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소설 속에서 그의 고민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거대한 교회의 부조리가 걸려 있는 문제다. 그 비리를 건드린다면 석탄 납품이나 사업에도 분명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삶도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펄롱은 그냥 한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그냥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조금 불편해졌다. 작가는 우리에게 펄롱처럼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선행이란 이런 거라고, 그냥 그렇게 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훈이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느낌도 있었다.


'아,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내 가족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주인공 펄롱처럼 용감하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나는 비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걸까?


종교적으로 보면 답은 분명하다. 내 앞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단한 구원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종교가 말하는 윤리일 것이다. 너무 자명해서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아이를 구하면서 감당해야 할 수많은 불이익을 왜 내가 떠안아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정말 이렇게 단순한 문제일까?

소설 속 펄롱은 그냥 해버린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거대한 권력의 부조리를 왜 일상의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걸까?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일도 어딘가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교황청에 익명으로 제보했을 것 같다. 객관적인 사실만 나열해서 말이다. 내가 확신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실이고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한 부분만 보고 결정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비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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