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을 부순 것은 '나만의 해석'이었다

책 <완벽한 아이>를 읽고

by 노정희

모드 쥴리앵의 실화 에세이 <완벽한 아이>를 읽으며,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통제의 상자 안에 꾸깃꾸깃 넣어버릴 수도 있는지,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탈출할 수도 있었는지 목격했다.


모드의 아버지는 자신만의 성을 짓고 아내와 딸을 길들이려 했지만, 내 눈에 비친 그는 그저 극심한 나르시시즘과 망상에 갇힌 가해자일 뿐이었다.

초인 만들기 프로젝트라니.

어린아이에게 술을 먹이고, 맨손으로 못질을 하게 하고, 겨울에 난방 없이 차가운 방에서 자게 하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게 한다. 고통을 못 느끼는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정작 자신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아내와 딸을 자신의 허물어져가는 육체 수발을 들게 하는 망상장애 나르시시스트다.


프리메이슨의 그랜드 마스터라고 자처하는 그는 의외로 허술했다. 그는 딸에게 《자본론》과 니체, 심지어 사드 후작의 작품까지 읽히며 정신적 훈련을 강요했다. 하지만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행위다. 똑같은 문장을 읽어도 아버지는 '지배'를 읽었겠지만, 영리한 모드는 그 틈새에서 '부조리'를 읽어내며 자신만의 정신적 망명지를 구축했다.

책 속엔 나오진 않았지만, 프리메이슨이라는 것도 망상의 일종 아니었나 싶다. 책이라는 사고 확장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작품 속 엄마는 남편을 증오하고 답답해하면서도,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내면의 상처 때문에 남편이 구축한 지옥 같은 환경에서조차 일종의 안정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남편의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불행을 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딸을 괴롭힌다. 딸에게는 자신 또한 권력자의 위치에 서서 불만을 해소했기에 모드만큼의 탈출 욕구가 없었다. 그녀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가장 불쌍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유를 갈망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혈육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작품 속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것 같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모드가 탈출할 수 있었던 건 몰랭 선생님이라는 존재 덕분이었다. 모드는 엄마보다 운이 좋았다. 영리하고 따뜻한 조력자를 만나 비로소 아버지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모드는 동물과 음악에 마음을 주며 아버지의 세계관을 내면화하지 않았고, 결국 통제에 대한 극심한 환멸 끝에 자신을 가둔 세계와 맞섰다. 그것은 아버지의 훈련이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통제에 맞선 자아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어린 시절, 은연중에 '남들은 나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디폴트 값처럼 품고 살았던 적이 있다. 자기 연민이 강하고, 내면이 취약한 엄마에게 은연중에 배워온 것 같다. 비교우위를 따지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나 경험을 배우기보다 남들은 나보다 똑똑하고,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럴수록 나의 존재는 늘 누군가의 밑에 놓여야 했다.


오랜 시간 책과 영화를 통해 나만의 해석 공간을 넓혀왔다. 나이가 50에 가까워진 지금, 나는 비로소 단단해진 나만의 통지표를 받아 든 기분이다. 아이도 잘 크고 있고, 가정생활도 편안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쫄지 않고 나만의 영역을 일구며 살아온 시간이 꽤나 견고해졌음을 느낀다.

물론 여전히 나는 '강철 멘탈'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잔뜩 쫄기도 하고, 긴장과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긴장과 예민함은 아직 극복이 되지 않은 삶의 숙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언가를 갖고 싶고, 되고 싶어 안달하거나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낮추어 보는 태도만큼은 사라졌다. 나만의 해석으로 인한 나만의 심리적 공간이 단단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모드가 세상에 나와 멋대로 기른 헤어스타일과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또래들을 보며 느꼈던 그 경이로운 시선을 기억한다. 세상은 그렇게나 다양하고 넓은 곳이었다. 조금 더 일찍 단단해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시행착오 없는 성장이 어디 있으랴.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밀도 있게, 이제는 내가 지은 나만의 해석 공간 안에서 '나다운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영화 <더와이프>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