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보고
강스포 포함입니다. 영화 보고 읽어주세요!!!
영화 <파워 오브 도그>, 뒤통수 한방 제대로 맞았다.
1925년 미국, 몬태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은 거친 카우보이의 삶을 산다. 형과 달리 동생 조지는 카우보이의 삶을 거부한다.
어느 날 동생 조지가 미망인 로즈와 결혼해 그녀의 아들 피터를 집으로 데려오자, 필은 섬세하고 연약해 보이는 모자를 노골적으로 괴롭히며 압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피터가 자신을 닮았다고 느낀 필이 서서히 경계심을 풀고 소년에게 다가가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언젠가 지루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철학적 메시지가 있는 지루한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고 큰 기대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광활한 대자연과 카우보이들을 보여주길래 대자연 속 치열한 삶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다 싶었다.
근데, 깔리는 음악이 너무 날카롭고 신경질적이라 조금 의아했다. 뭐지?
보통의 경우, 치열한 삶에 대한 영화라면, 위로를 해주는 음악이 나와야 하는데, 대자연을 보여주는 장면과 날카로운 선율이 묘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주인공 필이 호숫가에서 혼자 몸을 진흙으로 칠하고 유유히 호수를 수영하는 장면을 보며,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동성애 영화로 가려나 보다' 싶어 살짝 식상해지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이 영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아주 서늘한 사이코 드라마였다.
영화 내내 필은 어둠 속에 존재한다. 동생에게 지독한 독설을 퍼붓고는 동생이 자신을 거부하며 뒤돌아 가는 모습을 보며, 필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말을 세게 하면서 연약한 내면을 보호하는 전형적인 인간처럼 보였다. 또, 동생과 한 침대를 쓰는 장면이 꽤 기괴했다.
어느 날, 동생이 결혼해서 데려온 여자, 로즈를 향한 대놓고 질투를 하고 자신의 부모님에게 로즈가 부도덕한 여자인 것처럼, 동생이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편지를 쓴다. 겉모습은 마초적인 성인이지만, 하는 짓은 어린애나 다름없다.
화면 속 서열도 확실하다.
필은 주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동생 조지와 그의 안내 로즈는 필을 올려다보는 시선 속에 있다.
그런데 로즈의 아들 피터만은 이 서열의 법칙에서 예외였다. 이상하다.
그게 이 영화의 반전을 꿰뚫어볼 수 있는 장치였는데, 놓치고 넘어갔다.
로즈의 아들 피터는 영화 초반에 종이꽃을 접고 있길래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같은 역할이려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따라갔다.
근데, 피터는 무표정하게 토끼를 해부하고 엄마를 '로즈'라고 부르며, 알코올 중독인 엄마의 술병을 슬며시 치워주는 모습에서 자신을 엄마의 보호자로 생각하는구나 싶어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날, 피터는 필이 숨겨놓은 아지트를 발견한다. 몸에 대한 탐닉이 보이는 잡지들이었다.
필에게 슬며시 접근하는 피터에게, 필은 자신의 옛사랑이나 동질감을 느끼며 보고 마음을 열었지만, 그건 필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을 뿐이었다.
피터에게 필은 그저 엄마의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으니까.
대사 중, 두 사람의 세계관이 극명하게 갈리는 대사가 나온다.
필은 인생의 어려움을 삶을 견뎌내고 단단하게 해주는 무언가라고 말하고, 피터는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필과 피터가 마구간에서 가죽을 꼬던 그날 밤이다.
필은 가죽 매듭 사이로 날줄을 집어넣고, 피터는 혀로 담배를 말아 필에게 건네준다.
에로틱함의 끝이군. 역시 퀴어 로맨스 물이었어.라고 단정하는 순간,
웬걸.
다음 날 필이 파리하게 죽어나갈지 진짜 예상 못했다.
필은 자신이 살해당했다는 것도, 배신당했다는 것도 모른 채 죽었다.
어쩌면 피터는 예전에도 엄마를 위해 아버지를 그렇게 제거했을지도 모르겠다.
필이 혼자 있을 때조차 진흙을 몸에 발라 자신을 감추려 했던 유약한 마초였다면,
피터는 그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거인을 잡아먹은 진짜 포식자였다.
마지막에 다정한 부모님을 창밖으로 보며 짓던 피터의 미소는 비뚤어진 보호자의 승리 선언 같았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철학적인 퀴어로맨스물이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엎어버린 사이코 반전 드라마였다.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