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간다는 것.

소설 <어린 왕자>를 읽고,

by 노정희

어린 왕자는 이해받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만나는 존재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잠깐 접했던 어린 왕자를 이제야 제대로 읽었다. 너무 유명한 책이라 오히려 읽지 않게 되었던 작품이다.

동화라기보다 철학적 우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접했던 느낌과 나이 든 후에 읽는 느낌이 다르다. 아마 몇십 년 후, 그때 읽으면 느낌이 또 달라질 것 같다.


어린 왕자는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도,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태도가 없다.

저 궁금한 것을 묻고, 여러 인물들의 답을 듣는다. 배운다. 그리고 떠오르는 말을 조종사에게 할 뿐이다. 열렬하게 조종사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는다.

겉으로는 무심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 속내의 따뜻함과 다정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묘하게 매력적이라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어린 왕자를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조금 저릿하다.

그가 돌아간 별은 너무 작아서 큰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온통 큰 하늘이 어린 왕자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의 그림 (조종사 자아, 본질)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툭 받아들여준 최초의 인물이다. 그것은 아마 조종사에게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첫 번째 경험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조종사처럼 특별한 그림 재능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조종사처럼 마음속 한 구석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어린 왕자는 나의 마음속 어린아이와도 만났다. 그래서, 조종사에게 어린 왕자가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나에게도 어린 왕자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 하늘을 보며 그의 별을 찾아볼 것 같다.


읽는 내내, 어린 왕자가 예수와 겹쳐 보였다. 요즘 성당을 열심히 나가서 그런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면, 사막, 우물, 뱀, 돌아감, 순수한 존재의 가르침과 같은 키워드들은 성서적 요소들과 닮았다.

어린 왕자가 뱀을 통해 자기 별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십자가를 통해 예수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떠올랐던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왕자를 떠나보내는 조종사의 마음이 성서를 읽으면서 예수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린 왕자도 지구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여우에게서 관계의 의미를 배우고, 장미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는다.

장미라는 존재도 꽤나 흥미롭다. 나는 장미를 연인이라기보다 운명처럼 우리 삶에 주어진 존재처럼 느꼈다.

부모나 자식처럼, 그냥 삶 속에 운명처럼 주어진 존재말이다.

그들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시간을 들이며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들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 오로지 한 사람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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