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같이 봐야 재미있다.

by 노정희

최근에 동네 문화센터에서 영화와 문학 이야기 수업을 듣는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셨던 강사님은 평생 영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일반 직장을 다니다가 중년이 되어 이 수업을 만들어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다니신다고 한다. 영화의 역사부터 영화 언어까지 배우는데, 꽤 재미있다.


나도 어린 시절,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영화를 참 좋아했다. 용돈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하루에 극장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본 적도 있었다. 불이 꺼진 영화관에서 오롯이 영화에만 몰입하는 경험이 좋았다. 아무런 잡념 없이 영화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지금도 여전히 좋다.


다만 요즘은 극장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가끔 혼자 영화를 보게 된다. 분명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는데도 오싹해질 때가 있다. 쫄보인 나는 그런 경험이 싫어서, 예매할 때 관객 수를 꼭 확인한 뒤 결제한다. 넷플릭스에 수천 편의 영화가 있지만, 그것이 줄 수 없는 극장만의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어제 수업에서는 최초의 영화 상영으로 알려진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도, 박물관에서 영화 비슷한 영상을 상영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고 박물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웃픈 이야기다. 최초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또 뤼미에르 형제 이전,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도 영화의 상업적 가치를 알아봤던 것 같다. 그는 키네토스코프라는 장치를 통해 혼자서 영상을 볼 수 있게 했고, 이를 여러 대 설치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1분 남짓한 영상을 보는 데 드는 비용이 지금 돈으로 4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나라면 봤을까. 잘 모르겠다. 각종 소송으로 악명이 높았던 토머스 에디슨이 특허 문제로 바쁜 사이, 프랑스에서는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관 상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역시 한눈팔면 안 된다! 또, 선량한 천재 같았던 에드슨의 이미지가 왠지 심술보 같은 사업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뤼미에르 형제는 필름 공장 아들이어서, 필름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영상과 촬영 개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영화는 지금처럼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단면을 포착한 영상이 많았다. 공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장면 같은 것처럼 말이다.


지금 보면 화면은 거칠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으로 퇴근했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아마 촬영 사실을 미리 알렸던 것인지, 유난히 화려한 모자를 쓴 사람들이 눈에 띈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진을 찍을 때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비슷한가 보다.

뤼미에르 형제는 10년 사이에 1400편이 넘는 영상을 찍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흥미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 번 보면 신기하지만, 반복해서 볼 이유는 없는 영상들이다. 결국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영사기를 들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까지 다니며 상영 사업을 벌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접었다고 한다.


1895년에 시작된 영화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보고, IMAX 상영관에서도 영화를 본다. 방 안에서도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수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영화와는 조금 다르지만, 유튜브를 통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영상을 소비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AI로 나만의 영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가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영상이 없던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해진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속 공장 직원들은 그날 오후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혹시 뤼미에르 사장님이 찍어준, 자기 모습이 담긴 영화를 보며 서로 웃고 떠들지 않았을까.

역시 영화는 같이 봐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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