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미미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고

by 노정희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당시 유행하던 마론 인형을 선물 받았던 기억이 있다.

크리스마스 아침, 머리맡에서 발견한 그녀의 이름은 미미.

풍성한 금발머리에 쌍꺼풀 진 파란 눈, 오뚝한 콧날, 조그맣고 빨간 입술의 미미는 얼마나 예쁜지. 그렇게 예쁜 인형은 본 적이 없던 나는 너무 행복했다.


미미의 옷은 상자 안에 들어있던 한 벌뿐이었지만 집안에 있는 손수건, 헝겊을 이용해 다양한 옷을 입혀주었다.

문구점에서 미미가 입을 만한 다른 옷가지들을 발견하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으나 우리 집 형편에 색색까지 인형 옷을 살 수는 없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나의 창의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다 쓴 직육면체 성냥갑 위에 가재 수건을 깔아서 미미의 침대를 만들었다. 내친김에 서랍장의 물건을 다 빼버리고 미미의 방을 만들어 집안을 어지러 놓기도 했다. 엄마를 졸라 뜨개질로 만든 이불도 덮어주었다.

서랍의 한쪽 벽면에는 미미의 화장대, 다른 벽면에는 성냥갑 침대를 놓아주었다.

나도 없는 방을 미미는 가질 수 있었다.


머리를 알뜰살뜰 묶어주고 땋아주고 입술도 빨간 볼펜으로 덮칠 해 주었다.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었으나 예뻐지기는커녕 점점 꼬질꼬질해졌다.

엄마가 나를 씻겨주듯 나도 미미를 목욕시켜주기로 했다.


옛날 공산품의 품질이 나빴는지 엄마가 싸구려 인형을 사줬는지 모르겠지만 목욕을 마친 미미는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미의 머리통 속에 물이 차 물소리가 났다.

머리 빗질을 열심히 해준 덕분에 미미의 탈모 진행이 가속화되었다. 오른쪽 귀 옆머리가 다 빠져버린 미미의 미모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너무 슬펐다.

대머리가 되어가는 미미.

가재 수건을 이용하여 머리에 모자를 만들어주었다. 풍성한 모발을 자랑하던 미미의 부분 탈모는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어린이가 끝나는 초등학교 졸업 날까지 미미를 제외한 기억에 남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소소한 무언가를 더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잊히지 않는 선물은 오로지 미미뿐이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미미 덕분에 서글픈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나의 아들을 비롯한 요새 아이들은 매해 새해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어린이날 선물, 생일 선물 때마다 받는다.

꼬꼬마 때는 마트에서 육아에 지친 엄마들과 인정 넘치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에게 생떼를 써 기어코 장난감을 한 개씩 손에 넣는다.

몇 만 원짜리 장난감이던, 몇 천 원짜리 장난감이던 유효기간은 하루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주인의 애정을 받지 못한 장난감들은 집안 구석에 처량하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방치되어 있다. 우리 집뿐 아니라 아이 친구네 놀러 가 봐도 사정은 다 비슷하다.

아이들은 물건을 아끼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어린 시절을 추억할 무언가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 상황 오히려 서글퍼 보인다. 풍요 속의 빈곤.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는 운동화라는 존재가 특별하다.

새로 산 구두를 잃어버린 동생이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 오빠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를 빌려준다.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시간대로 나누어 신는 운동화.

달리기 대회의 3등 상품으로 걸린 새 운동화를 타기 위해 오빠는 달린다.

구질구질한 상황과 환경이지만, 아이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 때문에 영화는 더없이 아름답다.


나의 아이가 어린 시절을 기억할 추억의 물건이 무엇이될지 너무 궁금하다.

어른이 되면 알려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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