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와 동태찌개

by 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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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테이크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항상 스테이크라고 말한다.

아이가 내 입맛을 닮았는지 아이도 스테이크를 좋아한다.

가족 생일날에는 어김없이 생일이라는 핑계를 대고 스테이크 하우스에 간다.

거뭇거뭇 탄 듯한 겉 표면에 살짝 핏기가 서린 정도의 굽기가 딱 좋다.

지글지글 뜨거운 불판 접시에 버터와 볶은 브로콜리, 토마토, 버섯들과 짭짜름한 스테이크 한 덩어리.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한 입 베어 문다.

입안으로 적당한 기름기와 함께 육즙이 쫘악 퍼진다.

첫 입이 가장 맛있다.

몇 입 먹다 살짝 느끼해질 때면 얼음 가득 넣은 콜라 한 잔을 쭉 들이켠다.

이렇게 먹다 일찍 죽을 것 같아 샐러드도 한 움큼 먹는다.

아이 입에도 샐러드를 한 움큼 먹인다.


스테이크 한 접시에 볶음밥과 샐러드를 시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룰이다.

3 식구가 몇 조각씩 입에 넣으면 금방 스테이크 한 덩이가 사라진다.

스테이크 마지막 조각을 아이에게 양보하며 나중에 크면 엄마에게 스테이크 많이 사달라고 세뇌를 한다.

아이는 아기 참새처럼 입을 쪼옥 벌리며 스테이크를 받아먹고는 그러겠노라며 나와 대충 약속을 한다.

나는 믿는다. 그 약속을...

20대 중반 회사에 취업을 한 뒤, 지금은 없어진 베니건스의 비프 치킨 콤보 화이타를 자주 먹으러 갔다.

내가 번 돈으로 친구들과 어울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늘하늘 한 원피스와 뾰족한 샌들과 함께 몇 달치 월급을 모아서 산 가방을 메고 신나게 입구에 들어섰다. 웨이팅을 몇십 분씩 해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가 풍기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활기가 넘쳤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난 상태로 두툼한 메뉴판을 몇 장씩 넘기지만 항상 주문하는 요리는 비프 치킨 콤보 화이타였다.

매콤하게 볶아낸 양파와 파프리카, 피망.

짭짜름하게 구워낸 소고기와 닭고기 조각을 멕시칸 식 빵에 새콤한 소스를 발라 싸 먹었다.

테이블 가득하게 빵과 음료수, 샐러드가 차려진 자본주의적 풍요로움이 좋았다.

신나는 음악과 상냥한 직원들의 서비스.


궁핍한 시절의 나를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린 시절 엄마는 음식을 잘 못하셨다. 못하셔서 그런지 음식 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하셨다.

지금도 당신은 음식 못한 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신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밭에서 뽑은 배추와 무를 엄마에게 주면 엄마는 썩이기는 아까워 꾸역꾸역 김치를 담그신다. 김치를 혼자서 겨우 겨우 담그시고는 며칠씩 허리가 아파 앓아누우신다.

김치 담그자고 부르시면 귀찮고 싫어도 꾸역꾸역 갔을 텐데 독립심이 강한 엄마는 절대 딸들을 부르시는 법이 없다. 그냥 혼자 앓고 계신다. 답답하다. 절대 김치 담그지 마시라고 딸내미 특유의 잔소리를 한다.

그래야 도움의 되지 못한 나의 죄책감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형편으로 요리를 못하는 엄마가 할 수 있었던 메뉴는 정말 한정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뭘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머릿속에 기억이 남는 음식이 별로 없다.

기억에 남는 음식이 한 개 있긴 한데 멀건 동태찌개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별로 들어간 것 없는 찌개도 아니고 국도 아닌 동태찌개.

검은색 둥그런 밥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동태찌개 한 그릇과 밥과 김치는 내 머릿속에 궁핍의 기억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모두 아름답게 채색되는 경향이 있지만 마흔 중반이 된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결핍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성숙함이 부족하다.

없는 살림에 엄마가 해준 멀건 동태찌개의 기억보다는 풍요로움의 상징인 스테이크가 좋은 철없는 마흔네 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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