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여드름 투성이 여학생입니다. 조금만 부끄러워도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는 게 너무 싫습니다.
한나는 눈도 나빠서 도수 높은 뺑글뺑글 안경을 쓰니 가뜩이나 예쁘지 않은 얼굴이 더욱 못나게 보여 거울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친구들의 키는 벌써 어른들처럼 큰 데 한나는 아직도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했어요.
언니 몰래 언니의 예쁜 원피스를 입어도 한나에겐 커다란 포대자루처럼 보입니다.
언니는 벌써 대학생이 되어 화장도 예쁘게 하고 짧은 치마도 입는데요. 뽀얀 피부, 잘록한 허리에 얇은 다리. 어떤 옷을 입어도 너무 예쁘답니다.
한나는 그런 언니가 너무 부럽기도 하고 너무 질투 나기도 해요.
어느 날, 한나의 언니는 과친구들이라며 여자친구, 남자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어요. 과제를 같이 할 거라나요.
한나는 언니의 친구들 중 한 사람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혔어요. 꼭 왕자님 같았거든요. 훤칠한 키에 숱이 많은 까만 머리. 안경을 낀 모습이 아주 지적으로 보였습니다. 한나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가는 데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지요. 집에서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어떤 냄새가 아찔했어요.
평소에 한나는 언니가 집에 와도 별로 신경도 쓰지 않었지만, 언니의 남사친 얼굴을 한번 더 보기 위해 용기를 내어 차와 쿠키를 준비해서 언니 방으로 들고 갔어요. 언니는 재가 웬일인가 싶은 얼굴로 한나를 쳐다봤지만 한나는 언니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한나의 등장에 다들 동생이 너무 착하다며 칭찬 일색이었지요. 왕자님 같은 남사친도 같이 말이에요.
그리고는 자기 방에 돌아와, 발그스름해진 얼굴로 거울을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리곤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집어 들곤 침대에 누워 읽다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의 한나는 하얀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머리는 예쁜 웨이브를 휘날리며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니의 남사친이 한나에겐 찡긋 웃으며 꽃 한 송이를 건네줍니다.
한나는 꿈속이지만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둘은 산책을 하며 집 근처에 있는 해변으로 향합니다. 마침 노을 지는 바다와 하늘은 핑크빛으로 물들여집니다. 하늘에 둥실 떠있는 구름은 거짓말처럼 하트모양으로 몽실몽실합니다. 한나는 부끄러워하며 왕자님과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한나는 얼굴에 덮인 책을 치우고, 흘린 침을 쓱 닦습니다. '아~~ 너무 좋았는데.' 더 꿈을 꾸지 못해 아쉽습니다.
부스스한 얼굴로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 한잔을 시원하게 마십니다.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데 꿈속의 왕자님인 언니 남사친이 한나 쪽으로 쓰윽 다가오는 게 아닌가요. 한나는 터질듯한 가슴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옆으로 비켜서는 데 한나의 눈에 왕자님의 시커멓고 구멍 난 양말이 들어옵니다. 침을 꿀꺽 삼키면서 숨을 들이켜는데 어디선가 풍겨오는데 지독한 꼬랑내 냄새에 잠시 정신이 어질 합니다. 한나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 빨게 집니다. 한나는 이것이 부끄러움 때문인지 실망감 때문인지 아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