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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희 Jan 31. 2024

쫄면의 기억

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긴 전쯤이었나? 지금은 돌아가신 큰 고모네집 근처에 천호시장이라는 곳이 있었다. 지금도 시장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시장 속 분식집이라는 것을 처음 가본 때였다. 언니가 쫄면을 처음 시켜준 적이 있다.

쫄면? 이름이 좀 이상했다. 면이라곤 라면이나, 집에서 엄마가 간장과 참기름이 슥슥 비벼준 소면뿐이었는데. 쫄면이라니.

맛이 상상이 가지 않아 쌜쭉하게 고개를 외로 꼬고 있었다. 그때는 편식이 심해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던 것 같다.


드디어, 쫄면 등장!

넓적하고 깊은 하얀 플라스틱 대접에 긴 빨간 쫄면. 삶은 계란 반쪽, 새콤하게 절인 무절임, 상큼한 오이채, 고소한 참깨가루. 이렇게 단출했다.

한 입 먹어본 쫄면의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새콤달콤한 고추장 소스와 쫄깃쫄깃한 식감의 시원한 면발.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이후, 쫄면에 대한 각성으로 새로운 분식집을 갈 때마다 쫄면을 시켜보는 데 이상하게 그 맛이 아니다.

어떤 곳은 양배추채가 들어있어 쫄깃한 쫄면의 식감을 방해했고,

어떤 곳은 콩나물이 들어 있어 콩나물대가리가 쫄면과 어울리지 않기도 했다.

또 어떤 곳은 내 기준에 절임무가 너무 시큼해 새콤달콤 상콤한 쫄면의 맛을 구현해 내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서 쫄면을 도전해 보면, 면발이 너무 삶아져서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지 않기도 했고,

내 기억의 쫄면 초장소스는 완벽한 50대 50의 신맛과 단맛이었는데, 어쩔 때는 신맛이 60이고 단맛이 40이라 설탕을 더 넣으면 텁텁해질 때도 있었다.

완벽한 비율을 찾기가 어려워 유명하다는 쫄면집 밀키트를 구매해 봤지만 역시나 내 머릿속에 있는 50대 50의 새콤달콤 맛이 나지 않았다.


과연, 40년 가까이된 나의 기억. 특히나 맛에 대한 기억이 온전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절대강자의 쫄면을 먹더라도 그때 그 시절 8살 때 먹어본 첫 쫄면은 왠지 영원히 구현될 수 없는 그 무언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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