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크루 8기를 시작하며
일단, 게으른 회원으로 1달이나 잠수 탔던 나를 다시 받아준 라라크루에게 감사를 보낸다. 꾸벅.
8기가 시작되었고 다른 회원님들의 열정적인 글이 마구마구 단톡방에 등록되는 것을 보니, 이렇게 계속 잠수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찌어찌 다시 힘을 내어 시작해 봅니다.
어린 시절,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다. 아니. 공부를 어찌하는 건 줄도 모르는 개념 없는 꼬맹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텔레비 (그때는 tv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없었다. 오로지 테레비였다.) 삼매경에, 시멘트 바닥에서 분필로 선을 찍찍 그어놓고 사방치기며, 땅따먹기며, 구슬 따먹기, 고무줄놀이, 딱지 먹기 하느라 하루 해가 너무 짧았다. 책? 그런 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심각하게 놀던 그때, 한글도 다 떼지 못하고 국민학교 입학(난 초등학교 졸업자가 아니다.)을 했으니 알림장 베껴 쓰는 것조차 당시 나에겐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개발 새발. 꼬불꼬불한 글씨. 이게 다 우리 무심한 모친 탓이라고 힘주어 외치고 싶다. "어머니! 애를 왜 이리 방치하셨나요?"
우리 아들을 비롯한 요즘 애들은 한글을 물론, 영어도 어느 정도 배우고 입학한다. 받아쓰기에서 한두 개 틀렸음에도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아들을 볶아 챘다. "내가 어제 알려준 건데 이걸 틀려? 쯧쯧쯧"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생각 못한다는 말은 바로 날 두고 한 말이다.
국민학교를 입학하자마자 공포의 받아쓰기 시험이 시작되었다. 집에 와서 교과서 한 장 펴 본 적 없던 내가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학교는 그런 나를 배려해주지 않았다.
시험 강행!
부끄럽지만 받아쓰기 성적은 대략 30~40점대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3~4개 정도 맞았다는 건데. 그렇게 연습한 번 하지도 않고 3개나 맞았다니. 나는 천재였던 걸까? 껄껄껄... 소리 내어 웃어본다.
어느 날, 초심자의 행운이 다 했던 건지. 10점을 맞은 적이 있다. 뭐. 한 개라도 맞았다는 것이 신기한 것이지만... 30~40점은 받던 내가 10점이라는 점수는 너무 부끄럽고, 엄마한테 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 우리 모친이 그 점수받아왔다고 혼을 내어선 안된다. 인간적으로다...)
아무튼,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받아쓰기 공책의 일부를 쭉 찢었고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심했다.
완전범행!
'내 입만 닫으면 누구도 내가 시험을 봤는지 모를 테지... 흐흐흐...'
하지만 난 알림장에 받아쓰기 틀린 것 고쳐오기라고 숙제를 적어가고야 말았다.
나는... 정말 띨띨했다.
그날 여느 때처럼 책가방 던져놓고, 늦게까지 놀다가 저녁 무렵에 집에 들어가니, 서슬 퍼런 우리 모친께서 이리 와서 무릎 꿇고 앉아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뭔 일인지 까맣게 모르고. 모친께 무참히 깨졌다.
"공부 못하는 자식은 키워도 거짓말하는 자식은 키울 수 없다."
무심한 모친 덕분에, 공부에 학을 때지 않고 성인이 되어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훌륭한 아줌마가 되었고, 올바르게 훈육해 주신 덕분에, 작은 것도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훌륭한 아줌마가 되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아주 못하진 않는다. 조금 더 혼났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