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말간 입술을 쪽 내밀어 뽀뽀를 해준다. 밤에는 예쁜 목소리로 “엄마, 잘 자!”하고 세상모르게 자는 아들 모습은 꼭 천사 같다.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세상에 처음 나와 모든 게 낯설어서 울어대다가 아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빵긋 웃는 그 갓 난 아기다.
11살이나 되었지만 내 눈에는 마냥 아기처럼 보인다.
이 아이가 10년 뒤면 가야 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그곳... 군대
몇 년 전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을 봤다. 주인공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군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끊임없이 갈등을 만든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증오했던 군대 문화에 잠식당해버린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가해자가 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느물 느물 연기하는 하정우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세상 어리바리한 고문관 역의 윤종빈 감독 모습도 재미있다.
군대라는 곳의 민낯을 본 것 같았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저런 지옥 같은 곳에 가야 한다니...
방법이 있다면 보내고 싶지 않다. 아들을 가진 친구에게 물어봐도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가 콧물만 흘려도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런 사랑스러운 아들을 625 전쟁 때 쓰던 수통을 아직도 쓰고, 선임의 말에 꼼짝도 못 하고, 각종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이상한 나라로 보내고 싶지 않다.
넷플릭스 시리즈 [D.P.]는 군대라는 곳에 대하여 매우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고 화제가 되었다. D.P. 출신 연예인이 매스컴에 나와 영화가 얼마나 현실과 비슷한 지 허풍을 더해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궁금하던 차에, 남편에게 같이 보자고 했다. 남편은 굳이 군대 생각을 떠 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의 머릿속 그곳은 다시는 떠올리지 않고 싶은 곳 인가보다.
[D.P.]는 군대 내에서 각종 사건으로 인하여 탈영한 병사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나름의 도움을 준다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약간의 코미디 요소도 있고, 탈영병을 찾아다닐 때는 탐정 수사물 같은 장르적 재미가 있다. 탈영병과의 대치상황에선 액션 활극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느물 느물하고 발랄한 연기가 극의 재미를 더해 준다. 만약 군대에 이런 종류의 상사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우 허구적인 캐릭터다.
영화 속 몇몇 캐릭터들은 공포 그 자체인데, 그들의 가혹행위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심약해 보이는 후임을 한 번 건드려본다.
극심한 반발이 없다.
가해자는 자신이 한 행동을 장난으로 규정하고 강도를 높여 또 건드려 본다.
또 반발이 없다.
같은 패턴의 가혹행위를 반복한다.
가해자는 어디까지 괴롭혀도 되는지 그 선을 모르고 피해자도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그 선을 모른다.
이런 가혹행위를 참다못한 피해자들이 탈영하기도 하고 가해자를 나중에 찾아가 보복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20대 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왜 이들은 이런 비극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군대 내 몇몇 상황들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우는 인권이라는 개념을 가뿐히 무시한다.
이런 폭력은 반드시 군대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라고 생각해본다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영화 [파수꾼]이나 [돼지의 왕], 그리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각각의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다. [파수꾼]은 남자고등학교에서 [돼지의 왕]은 남자 중학교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교에서 비슷한 맥락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약한 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서열을 공고히 하는 악마적 취미는 어디서부터 기인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인간의 본성인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폭력성을 보인다. 초등학교 저학년 경우에도 그렇다.
학기 초반에 힘센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을 한 뒤 나름의 서열을 만든다. 힘이 약한 아이들은 그 서열다툼에 끼려고 하지도 않고 힘센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서열에 순응하며 생활한다. 일종의 평화가 만들어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이럴지인데 힘이 더욱 세지고 공식적으로 계급이 존재하는 군대라는 장소는 약육강식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그야말로 폭력의 시스템이 완성되는 장소다.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하였다.
인간은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 나의 아들에게 인권에 대한 개념을 세뇌시키듯 강조하고 있다. 사람은 절대 때려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이런 말을 잘 들어서 그런지, 싸움을 원래 못하는지, 유치원 시절 아이는 가끔씩 맞고 들어왔다.
어느 날은 꽤 심각하게 맞고 온 적이 있었다. 속에서 열불이 치밀었다.
인권을 세뇌시켰던 나였지만 아들이 맞고 들어오는 데, 잠시 이성의 끈을 놓게 되었다. 시무룩한 아이에게 “너도 가서 때려!”라고 화를 냈다.
아이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고 대답했다.
정말 때려선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건지, 자신을 때린 아이가 무서운데 엄마가 화까지 내니 궁여지책으로 한 거짓말인지 아이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아들 키우기 관련 정보들을 찾아봤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가장 납득이 되는 말은
“아마, 맞고 온 아이도 그 당시에 때릴 수 있었다면 이미 때리고 왔을 거예요. 그런 아이에게 엄마가 때리고 오라고 하는 건 일종의 폭력입니다.”
라는 것이었다.
다시는 너도 때리고 오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반드시 엄마나 아빠, 그리고 선생님께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1학년이 되었고 하필이면 자신을 때렸던 아이와 한 반이 되었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 같이 있기가 무서웠던지, 쉬는 시간이면 도서관에 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 사이에 존재감이 없다며 담임 선생님께서 걱정스레 말씀해주셨다.
아이 말로는, 그 당시 학기 초 쉬는 시간이면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자주 다툼이 일어났다고 했다. 자신은 끼기 싫어서 도서관에 갔었고, 그곳에는 사서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신은 안전하게 있을 수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1학년부터 지금까지 맞고 들어온 적은 없다. 아이만의 방식으로 폭력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조금씩 크니 걱정도 조금 줄어들긴 했다. 이제 곧 고학년이 되면서 다시 시작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잘 버텨나갈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