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 1
어려서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가 있었다. 신들의 나라 이집트.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파라오의 저주, 공포영화에 종종 나오는 미라.
4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인 나일강.
"아침에는 4발, 점심에는 2발, 저녁에는 3발이 되는 것은?"이라는 엉뚱한 퀴즈를 내는 공포의 스핑크스.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신비로운 이미지와 이야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이집트를 반드시 가보고 싶었다.
20대 중반쯤, 학교도 졸업하고 회사라는 곳에 취업했다. 여행을 할 만큼 돈도 모았고 마침 짜증 나는 회사도 때려치웠으니 나의 로망을 실현해 볼 적기였다.
당시 유행하던 '친구 따라 인도 가기'라는 여행사가 있었는데, 이집트, 터키, 그리스를 한 달짜리 코스로 단체 배낭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이건 내가 꼭 가야만 한다는 다짐과 함께 덜컥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일반 패키지여행과 다르게 친절한 가이드가 인솔하는 것이 아니라 시크한 배낭여행 선생님이 여행을 함께 콘셉트이었다. 인천-카이로의 왕복 비행기표를 제외한 모든 숙소, 관광, 터키, 그리스 이동에 필요한 비행기표 등을 모두 현지에서 조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모든 걸 사전에 계획하고 떠났던 기존 여행과 달랐다. 걱정됐다. 하지만 여행 전 교육을 받았고, 같이 가게 될 20여 명의 배낭여행 친구들이 있어 대충 묻어가도 될 것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인천 공항.
배낭여행 친구들의 직업은 조금 다양했다. 학교 방학을 이용하여 온 여자 선생님들이 가장 많았고, 여행 전문 사진작가, 의대생, 50대 주부, 나와 비슷한 백수 등이었다.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를 실천에 옮긴 유부녀와 남자가 있었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멋진 사진을 찍어 여행 후 전문 사진집을 내신 50대 사진작가님도 계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50대 교사분이셨다. 자기 제자들이 서로 싸우고 씩씩거리고 있으면 자기는 가서 그런단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데 굳이 쟤랑 놀면서 그러냐? 놀지 마!".
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 방법은 "친구들끼리 그러면 안 되지, 서로 사과하고 화해해." 이런 것들이었다. 세상에 사람이 많으니 굳이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맞추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그녀의 가르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맞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굳이 안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맞추려고 지지고 볶고 싸우냐 말이다. 요새 SNS에서 보면 피해야 할 사람들, 정리해야 할 사람들 등등 이런 주제로 많은 글이 많이 올라오고 호응도 얻는다.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사는 것이다. 15년도 더 된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는 건 나도 그분의 말에 상당한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지금, 안 맞는 사람은 어떻게 노력을 하고 애를 써봐도 끝내 맞지 않는다. 말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면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되고 끝내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정 쯤, 이집트 공항에 도착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떡 진 머리와 피곤한 몸뚱이를 어디엔가 누이고 싶었다. 공항의 통유리창 사이로 어둑한 주차장이 보이고 어디선가 매캐한 가솔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인솔자 선생님은 이제부터 전쟁이라며 각오들 단단히 하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비장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공항 건물을 나가셨다. 새벽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택시 운전사들 사이에서 그녀는 우렁차게 택시 운전사들과 가격을 흥정했다. 가냘픈 몸매의 선생님께서 혹시라도 소도둑놈들처럼 생긴 남자들에게 어떻게 될까 봐 선생님 옆으로 조용히 다가섰다. 솔직히 너무 피곤해서 대충 원하는 대로 가격을 주고 깨끗한 호텔에 가기를 바랬다. 하지만 카이로 택시의 생리를 아는 선생님께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가격부터 시작되었던 택시비는 말 한마디를 얹을 때마다 쭉쭉 내려갔다. 이것이 흥정이었다.
새벽, 카이로 중심가 시내에 내렸다. 20명 남짓한 여행객이 한 숙소에 다 머물 수는 없는 일이라 각자 흩어져서 숙소를 찾아야 했다. 일본어 교사를 하는 언니와 나는 한 팀이 되어 숙소를 찾았다. 숙소 직원이 언니에게 반했는지 자신의 4번째 부인이 되어 달라고 청혼을 했다. 미혼인 언니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4번째 부인은 좀 그렇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찾은 방은 백 년 동안 한 번도 안 빤 것 같은 붉은 담요와 닫아도 닫히지 않는 방문과 창문을 갖은 낡은 방이었다. 당연히 따뜻한 물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원효대사 해골 물 일화처럼, 피곤하면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꿀잠을 잘 수 있는 것이 나라는 인간임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차마 이불속에 발을 넣을 수는 없었고 담요 위에 가지고 간 침낭을 놓고 그 안에서 잠을 잤다.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침대 벼룩과 함께 이집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아침에 밝았다. 카이로의 아침은 뿌연 공기와 매캐한 냄새, 빵빵대는 차들 소리, 멀리서 들리는 코란 경전 소리가 한꺼번에 써라운드로 들렸다. 창문으로 바라본 거리는 쌩쌩 달리는 자동차 옆으로 느릿느릿한 달구지가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있으나 마나한 횡단보도를 사고 한번 나지 않고 잘도 건너다녔다. 사이렌처럼 큰 경전 소리가 들리면 길 가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신께 기도를 올렸다. 나와 다른 신을 믿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는 그들이 왠지 한없이 착하게 보였다.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우리는 지하철을 탄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피라미드에? 응? 지하철?
내 환상 속의 피라미드는 사륜구동 지프차를 타거나, 느릿느릿 낙타를 타는 것인데...
지하철이라니? 환상이 바사삭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기자역에 내려 몇 발자국 걸어가니 책과 TV에서 봤던 그 피라미드와 그 스핑크스가 참 멋 대가리 없이 서 있었다. 그 뒤로 낙타가 있긴 했다. 물론 호객꾼과 함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들어가 볼 수 있는 묘실 속에도 들어가 봤다. 저녁 무렵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조명 쇼를 보기로 했다.
피라미드 매표소 앞에 있는 피자헛 2층에서 알록달록 촌스러운 조명 쇼를 지켜봤다.
내가 책에서, 영화에서 봤던 건 이게 아닌 데...
정녕 사진빨이었던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