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 드라마에서 간호사 역할을 하던 박진주 배우분의 생활연기가 인기가 많았습니다. 업무에 찌들어서 영혼이 가출한 상태로 일을 하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셨죠. 당시에는 그러한 업무태도가 상대방에게는 어떨지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무엇이 더 나은지 선뜻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시는 분들이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공감하는 것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무던한 대응이 상대방을 더 안정시킬 때도 있습니다.
피해 아동들이 피해 진술을 할 때 나이가 몇십 년이나 차이가 나는 경찰수사관이나, 상담원, 그리고 동석하는 국선변호사들은 진술 내용에 매우 놀랄 때가 많습니다.
너무 어린아이들이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피해 내용을 진술할 때, 어떻게 하다 그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묻기 위해서 감정이 배제되지 않은 채 추가 질문을 할 때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그 어투에 담긴 놀라움과 의문들이 피해 아동들에게 전달되어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차라리 아무런 감정이 없이 기계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의 어투에 감정이 느껴지면 그 순간부터는 자신이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렇게 불편한 눈으로 보는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않은 채 조사가 끝나기도 합니다.
피해 아동들의 성격을 잘 파악해서 조사를 원활히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들은 조사를 받는다고 하면 일단 불편함을 느끼고, 위축되고, 때로는 무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신뢰관계 형성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차라리 피해 아이가 무덤덤하게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똑같이 무덤덤하게 조사로서 받아들이는 태도가 때론 오히려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제는 적당한 거리감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