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건들이 뉴스에서 날마다 들려오지만, 아마 아동학대 신고 이후의 진행 과정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은 많지 않으실 테지요.
아동학대 가해자가 친권자인 경우, 아동학대현장 출동을 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의 가장 큰 고민은 시설분리를 할지 말지의 여부입니다.
아동학대의 경우 학대 신고에 의한 현장조사가 끝난 이후 피해자 조사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피해자국선변호사가 법률 조력을 위해 동석을 하게 됩니다.
민법의 체벌권 조항이 개정된 후 신고된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신체적인 경우가 많지만 다행히 대부분이 경미한 경우입니다. 반대로 신체적 학대는 없었으나, 정서적 또는 방임으로 아동을 학대한 경우 상황이 좀 더 미묘해지지요.
그간 맡은 사건들 중에서 시설로 분리하고 싶었던 대부분의 사건들은 친권자의 알코올 중독과 방임 문제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의 경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일단 술이 들어가면, 새벽에 고성방가를 하고 집기를 부수고 아이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미 이웃들도 이런 상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벽에 시끄러우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고, 경찰관이 출동해 보면 아이들은 그 옆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당장 신체적 학대가 없었고 대부분 아이들은 친권자에 대한 강한 애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보호시설에서 지내보자는 권유를 따르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하러 각 해바라기 센터에 오게 되면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만나게 되는 것이죠.
피해 아동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친권자의 알코올 중독이 정신병원의 강제입원이 아니면 전혀 해결 방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아동이 먼저 부모님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할정도니까요.
누가 봐도 당장 그곳에서 나와야 할 정도의 상태라도 피해아동에게는 부모이고, 집이겠지요. 그런 곳을 떠나서 일단 시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으로 가는 것이 두렵지 않을 리 없을 테고요. 하지만 오히려 처음에 강하게 거절하던 아이들이 시설에 더 잘 적응하곤 합니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 주는 느낌은 없을지 몰라도, 따뜻한 식사를 하루 3번 먹을 수 있으며 좋은 것은 아니라도 깨끗한 시설과 개인생활용품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동의 개인위생 관리가 가능하도록 시설에 계신 선생님들이 엄청 애를 쓰시지요.
어린 학대 피해 아동이 집이 아닌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은, 그 아이의 집은 더 이상 그들에게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설이 만능은 아니겠지요. 보호시설들을 좀 더 집처럼 만들어 주고 싶지만, 그것도 예산과 인력 등 현실적인 문제로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요.
친권자에 의한 아동학대는 그 가해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으면, 대부분 아동보호사건으로 가정법원으로 이송되어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으로 종결됩니다. 그리고 시설에 잘 적응한 아이들은 사건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설에서 지내다 성인이 되면 퇴소합니다. 물론 성인이 되기 전이라도, 친권자가 양육교육을 잘 받고 개선이 될 여지가 많으면 원래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오히려 피해자 변호사로서는 아이들이 보호시설에 있으면 사건 이후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가 쉽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아이들에게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지체 없이 연락하라고 당부는 하나, 이후에는 거의 연락이 끊기게 됩니다. 아이들의 안부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집이든 시설이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그 어디든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래서 학대의 기억은 잊고 별 일 없이 평범한 하루를 지내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