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rtynine Sep 22. 2021
어릴 때는 한껏 멋부리고 사람 많은 시내로 나가는 것이 좋았다. 조금 내가 아닌 모습으로 네온 불빛마저 주눅 들던 그 화려한 거리에서 나는 남들이 볼 나를 신경 쓰며 걸었다. 그럴싸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비싼 카메라에 사진으로 담았는데, 보통 그 사진들이란 내가 보기 위한 것들이라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 많았다. 여하튼 그 시절에도 인스타의 할머니 정도 되는 싸이월드가 있었다. 와이셔츠 하나 달랑 입고 한 겨울 그 시내 거리에서 무슨 표정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 찍은 내 사진을 지금 와서 보면 왠지 측은하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싸이월드가 폐쇄되어 정말 다행이다.
나이가 드니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슬리퍼 끌며 허름해도 편한 옷을 입는다. 주로 나오는 곳은 걸어서 동네 한 바퀴, 손 떼 묻은 이곳저곳이다. 신경 쓰는 시선이 없어지니 그간 소외됐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거짓말처럼 안 보이던 길가에 꽃이 보인다. 정말 거짓말이라 생각했었다. 나도 조금 더 어릴 때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감상 떠는 말이라 여겼었다. 불행히(?) 나에게도 길가에 꽃이 보이는 시간이 오고 말았다. 계절 따라 바뀌는 색깔, 온기와 한기, 스치는 냄새와 지나가는 소리들, 뜨는 해와 지는 노을... 그간 애써 소외시켰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날이 좋으면 내가 좀 허름해도 좋다. 시선 닿는 곳이 달라졌기 때문에.
대학 졸업할 무렵,
나이 먹는 것이
마냥 서글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좋다.
한껏 꾸몄지만 뭔가 허했는데,
나름 괜찮아도 괜히 주눅 들었는데,
이제 허름해도 괜찮아서 좋다
아님 별것 아닌 것에 우쭐하지 않아서, 그저 그래서 좋다.
꽃 피우는 시절 우리, 꽃이 보이지 않지만
시들며 우리, 꽃이 보인다. 시들며 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