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

하면 된다 vs. 해도 된다

by thirtynine

술 좋아하는 한량이 늘 그렇듯 아버지도 노름을 좋아하셨다. 한날은 노름판에서 마을의 서예가 선생에게 크게 따셨다며 기분 좋게 ‘하면 된다’라고 붓글이 멋들어지게 써진 액자 한 판을 집에 들고 오셨다. 어린 내가 두 팔을 다 뻗어도 양 끝이 다 닿지 않는 액자를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거시고는 오늘부터 우리 집 가훈이라 하셨다. 그 붓글씨가 너무 수려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그 큰 글자를 반복적으로 보고 들었기 때문인지 ‘하면 된다’라는 그 말이 실제 내 가훈이 되었다.

이 말 덕분인지 보통 익숙하지 않거나 잘하지 못하는 일은 꺼리는 것이 정상인데, 나는 어릴 때부터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으면 다 하는 편이었다. 어차피 하면 된다 생각했기 때문에 뭐든 일단 하고 보았고, 실제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인지 하면 되는 일이 많았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이것저것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한가지 특출난 것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여기까지 말하면 별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하면 된다는 이 말이 효율이 필요 없는 일에도 효율을 따지는 습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뭐든 하면 된다 생각했기에 좀 더 빨리 잘하는 방법에 자연스럽게 몰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니 미리 세워둔 시간 계획에 대한 강박증, 그것이 어긋날 때 일어나는 약간의 불안 장애가 생겼다. 더 심각한 것은 공황 증상이었는데 된다 생각한 일이 안 될 때, 그런 것들이 쌓일 때 공황 증상에 시달려야 했다. 땅이 흔들렸고 주저앉아 누우면 멀쩡하던 천장이 내려앉아 숨통이 조였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지니 어쩔 수 없이 가훈을 손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하면 된다’ 이 말을 며칠 고민한 끝에 어감을 살리며 문제를 해결할 말인 ‘해도 된다’로 조금 손 보았다. 사실 오늘 새벽과 아침에도 이 ‘해도 된다’는 새로운 가훈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간밤에 둘째가 열이나 중간중간 알람을 맞추고 선잠을 자며 해열제를 먹였는데, 예전 같으면 충분하지 못한 수면이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 받았을 일을 평안히 넘길 수 있었다. 직장에서 조금 졸아도 된다. 큰일 없다. 그래도 된다. 괜찮다 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해도 된다.

하던 일이 조금 잘못 되도 된다.

“~해도 된다. ~해도 큰일 없다. ~해도 괜찮다. 그러니 쓸데없이 미리 걱정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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