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여자들

by thirtynine

인물 좋았던 아버지는 여자가 많았다. 학창 시절, 아버지는 할리 데이비슨 짝퉁 오토바이를 멋지게 타고 다니셨는데 항상 뒷자리에는 어머니보다 다른 여자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길에서 그런 아버지를 마주치면 아버지나 나나 그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 없었는데, 의아해 물어보거나 당황하는 건 늘 내 옆에 있던 친구 녀석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작은 엄마야 혹은 여자친구야 하고 무심히 답할 뿐, 나는 친구들에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잦아지니 당시 사춘기였던 친구 녀석들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나도 안 하는 인사를 아버지에게 몇 번씩 해대는 것으로 해프닝이 끝났다.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그래도 궁금했는지, 아님 내가 걱정되었는지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릴 때부터 너무 자주 봐온 일이기도 하였고 실제로 아버지의 여자들이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머니가 차린 밥도 같이 먹은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밥상 앞에서 어색해하는 나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작은 엄마야 인사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한동안 실제로 그 사람들이 작은 엄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 다방이나 술집에 종사하며 여기저기 떠돌던 그 작은 엄마들은 어머니의 따뜻한 밥이 낯설고 고마웠는지 어머니의 말을 누구보다 잘 따랐다. 밭 일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나를 돌봐주기도 하였고,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거나 가끔 일손을 돕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의 여자들에게 어머니는 늘 이 양반 술 좀 덜먹게 해달라, 옆에서 좀 잘 챙겨달라 말씀하시곤 하였다.

한가지 웃긴 사실은 이분들 중 몇몇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편찮아지신 이후에는 언니 언니 하며 수화가 너머로 안부를 묻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명절이면 타 지역에서 보낸 그들의 선물이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내가 군 휴가로 집에 왔을 땐 왜 군대 가는 것을 말하지 않았냐며 어머니에게 용돈을 쥐여 주고 간 분도 있었다. 그 돈을 받은 나는 그제야 이상했다. 그들이 작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초등학교 삼학년 때 깨달았는데, 그때 깨달은 내 생각이 맞는가 하고 의아했다.

자칫 잘못하면 상처받고 방황할 수 있었던 나에게 어머니는 오히려 많은 작은 어머니들을 만들어 주셨다. 가난한 농사꾼의 장녀로 태어나 다른 친구들이 학교 갈 때, 홀로 동구 밭 쇠꼴 베며 서러움을 겪어야 했던 나의 어머니는 학교를 단 한 번도 가지 못해 한글을 지금도 잘 모르시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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