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2. 선생님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에요? 괄호 열고 니가 뭔데 꼰대질이죠.
사실은 우리도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부족하다. 꾸준히 신나게 달려보자, 하고 재촉하지만 정작 난 꿈꾸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흔한 미술 대학원 졸업생이다. 작업을 한 시간보다 그에 대해 교육, 조언을 하며 보낸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더러 ‘당신들이 대학 교수도 아니고 유명한 작가도 아닌데 뭘 믿고 우리 애를 맡기죠?’ 하는 (다 큰 어른들의) 학부모들도 있고, 우리의 작업을 궁금해하는 수강생들의 표정에서 의구심이 읽힐 때도 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심으로 수강생들을 대하기 때문에 기성의 선생들이 겪지 않는 통증을 겪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기에 우리는 그냥 학원 선생, 자영업자일 뿐인 거다.
하지만 그들이 ‘감히 우러러보는’ 교수들이 이 친구들을 방치한 덕에 우리가 장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자들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우리 같은 사교육기관은 필요가 없었을 거다. 즉, 포트폴리오 작업이라는 것 자체는 혼자 할 수 있었을 일이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들은 신나는 창작 경험을 해봤어서, 미술 비전공자들은 창작에 기여할 다른 양분으로 가득해서.
우리는 유명한 작가도 대학 교수도 아니지만 부모들마저 소홀히 하는 심폐소생에 몰두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이 연락두절이 된 휑한 밤, 그녀를 알지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그녀일지 모르는 어떤 여자의 안부를 묻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개인으로서 우리의 우선순위는 뒤엉켜버렸다. 눈물 젖은 휴지조각을 눈두덩이에 붙인 채 집으로 향하는 이의 뒷모습은 여전히 외롭고, 부모에게 어떤 대화도 꺼내지 못해 주눅이 든 이의 관자놀이는 폭삭 주저앉아있다. 우리는 열심히 이 친구들을 어르고 달래 보지만, 집에 돌아가 일상의 파편을 마주하고 오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온다.
부모들을 원 없이 나무라는 상상을 한다. 원망스럽다. 어릴 적부터 그들이 만났을 온갖 선생이니 멘토니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때워버렸길래 우리는 매해 다른 얼굴에서 같은 눈빛을 마주하는 지경이 되었는지.
의무감이든 책임감이든 인간에 대한 애정이든 이게 우리의 일상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 작업을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사실 우리가 조언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림 자체에 대한 것들일 때보다 태도나 가치에 대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내 삶을 잘 붙들고 있을수록 좋은 얘기들을 건넬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작업도 안 하는 주제에 삶을 잘 붙드는 모양새를 잘 가꾸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둔치에서 가르치는 일이 가장 힘들다. 내 삶 조차 어쩌지 못하면서 가치에 대해 논하는 것이 부대낀다. 그런 이유로 그만둔 선생님도 있다.
이 친구들의 절박함이 읽힐 때 우리의 책임감은 커지지만, 여기저기서 버림받고 온 이들이 코너로 몰리고 몰려온 둔치에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우리가 무슨 대단한 걸 건넬 수 있을까 더럭 겁이 날 때가 많다. 나 조차도 쉬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때 스스로와의 거리가 가장 멀어진다. 내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면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했겠지, 이렇게 다독였겠지, 하며 학생들에게 건네는 말들은 아직 스스로에게도 건네보지 못한 말일 때가 많다. 이렇듯, 작업을 하기 위해 좋은 경제적 기반을 다진다고 사업장 하나를 꾸리는 동안 우리는 어떤 가치를 더듬고 따르지 못할 때 스스로를 가장 부끄러워하게 되는 공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