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08 충무로 고시원

by 열원

충무로 고시원에 살던 때에 알게 된 친구가 있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그 친구를 영훈이라 부르겠다. 영훈은 고민이 많은 친구였다. 그런 영훈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가족과의 문제를 어떻게 할지 같은 것을 물어봤다. 워낙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고 내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그럴 때마다 긴 대답을 해주었다. 영훈은 의견을 보태기보단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영훈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를 멋있는 사람으로 봐주었다. 내게 멋있다거나 대단하다거나 그런 칭찬을 했다. 대단할 게 없다고 생각한 나에게 그런 시선은 과분했지만,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영훈에게 좋은 형이 되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영훈에게 좋은 형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훈은 나에게 자주 연락을 했고 여러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매번 긴 대답을 해주었다. 그것이 즐거웠다.


영훈은 대부분 부모의 집 밖에서 생활했다. 그때도 영훈은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퇴소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영훈이 부모에 대해 깊이 얘기하진 않았지만 학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을 뿐 티를 다 내고 있었으니. 쉼터에서 쫓겨났어도 부모와 같이 지낼 수 없던 영훈은 내게 전화를 했다. 하루만 재워줄 수 없냐고. 이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꼭 시간 때문이 아니더라도 고시원에는 외부인을 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숙소를 잡아줄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거절했다. 그런데 가릴 것 없이 계속 부탁하는 영훈을 딱 잘라 무시할 수 없어서 일단 충무로로 오라고 말했다. 친하다고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서, 오죽했으면 나한테 부탁했나 싶었다. 같이 밥이라도 먹고 정 안 되겠으면 재워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고시원은 몸이라도 누일 수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이 지나 영훈이 도착했고 나는 자주 가던 김밥집으로 영훈을 데려갔다. 영훈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불안정해 보여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할 말이 없거나 피곤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불안정하다고 느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생각하려니 영훈의 표정이나 제스처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데도, 그때의 내가 영훈을 걱정했던 건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불안정한 영훈을 보고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다른 숙소를 구하기에 늦은 시간이기도 해서 고시원에 들어갈 작전을 짰다. 내가 먼저 고시원에 들어가 연락을 주면 영훈이 자연스레 들어오는 것. 그게 작전의 전부였음에도 벌벌 떨었다. 걸리면 고시원에서 나가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든든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내 상황도 그리 안정적이진 않았다.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고시원이라도 있으니 조금은 낫다고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고시원 건물에 들어갔다. 내가 먼저 올라가 총무실을 볼 때 때마침 총무가 자리를 비웠고 영훈은 들키지 않고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집을 보여주는 중개인처럼 괜히 어정쩡하게 있었다. 마치 내 고시원을 평가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생각보다 훨씬 작네요, 책상이 많이 낡았네요. 이건 쓸 수 있는 건가요? 이 방은 별로네요. 그런 말을 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당연히, 영훈은 아무런 평가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이 있었으면 조금 깔끔하게라도 하는 건데. 우리는 잠시 쉬다가 차례로 씻으러 나갔다. 그 와중에도, 씻고 난 후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우리는 작게 대화를 나누고 장난을 치다, 실랑이를 벌였다. 누가 침대에서 자느냐는 것 때문이었다. 바닥은 딱딱했고 짐이 많아 제대로 누울 수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도 편히 못 잤을 영훈이 바닥에서 자게 두고 싶지 않았고 영훈은 자신이 손님이니 나를 바닥에 재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 서로에게 양보하다 둘이 침대에 같이 눕게 되었다. 침대는 좁았지만 어깨를 움츠리고 관에 들어간 것처럼 몸을 가지런하게 모으면 어떻게 누울 수 있었다. 한 명이 바닥에서 자면 위에서 자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할 테니 차라리 둘 다 몸이 불편한 게 나은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훈이 잠들었고 나는 여전히 몸을 가지런히 한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영훈이 잠자면서 뱉는 숨소리를 들었다. 나의 작고 부끄러운 공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위안을 얻었다. 여전히 작고 부끄럽게 느꼈지만. 떨어질 것 같아 몇 번 자다 깼다. 그래도 상쾌하게 일어났다. 어제처럼 번갈아 씻은 뒤 고시원을 차례로 빠져나왔다. 나는 일을 하러 갔고 영훈은 부모가 없는 낮 시간에 집에 들른다고 했다. 영훈은 그 뒤로 어디서 잔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재워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나도 잘 곳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더 괜찮은 거처를 구한 것 같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다시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편하진 않았어도 다른 곳보단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전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때가 많아서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다. 영훈에게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대할 여력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었다. 잠깐은 좋은 형일 수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고시원에서 재워주고 일 년도 더 지나서 영훈이 자신의 입대 소식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다. 군 생활 중 연락한 영훈은 다행히 군대가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자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어서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 거기 있으면 밥 세끼도 제때 나오고 잠 잘 곳이 없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군대인데, 거기가 마음에 들 수가 있나. 어디랬지, 북한하고 가깝다고 했었는데.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고 그 뒤로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연락하지 않는 거겠지. 지금은 또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이따금씩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연락처가 남아있는지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지우지 않았으니 남아있기야 할 텐데, 연락을 하는 것도 어색할 것 같고. 이제 청소년이 아니니 그때보다는 상황이 낫겠지 하고 좋게 생각할 뿐이다. 나도 떨어질 때가 있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영훈 역시 그러겠지. 영훈이 편하고 안전한 거처를 구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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