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되기

10 대학동 원룸

by 열원

또 다시 애인과 헤어지고 살 곳을 구해야했다. 큰 돈을 모은 건 아니었지만 여윳돈까지 생각하면 보증금으로 백 만원은 쓸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공간이든 집이 될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서울에서 비교적 싸다는 신림으로 가기로 했다. 집을 구할 시기가 촉박했기에 동네를 알아본다기보단 무작정 싸다는 곳으로 정한 것이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이니 위치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모든 중개인이 그런 건 아닐테지만, 나를 꾀어내 이상한 방으로 이끌 것 같아 무서웠다. 집을 구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 직거래 카페에서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알고보니 부동산에서 나온 사람들 아닌가. 세입자나 집주인 대신 와이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방을 보여주었다. 방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가려는데 둘이 다른 방도 있다며 나를 데려가려 했다. 나는 괘씸해서라도 그들의 방을 보고 싶지 않았다. 마침 다음에 보러 가기로 한 방이 있어서 거절한 뒤 다음 장소로 향했다. 운이 나쁜건지 모두 그런건지, 그들도 부동산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애초에 세입자나 집주인인 것처럼 글을 쓰지를 말던가. 아무렇지 않게 명함을 내미는 그들 역시 괘씸했다. 아무래도 직거래가 어려울 것 같아 결국 다른 부동산을 찾아 연락했다.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의 사람들보다 편한 차림으로 나왔다. 중개인은 편하게 자신을 형이라 부르라고 했고 나는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가벼워 보였어도 나를 편하게 해주려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편해져서 같이 한참 집을 봤다. 신림역에서 서림동으로, 서림동에서 대학동으로. 괜찮은 방을 찾기 위해 조금씩 깊은 동네로 들어갔다. 옥탑방도 보고 반지하도 보고. 여기가 반지하지만 한쪽은 지상이니 괜찮을 거라는 말도 듣고. 대학동의 한 집을 보았을 때, 아 여기가 적절한 방이구나 싶었다. 월세가 높지 않고 방 상태도 괜찮고. 백 점짜리 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이었다. 문제는 보증금이 이백이었다는 것. 부동산 중개인은 집주인에게 대신 부탁해주었다. 이 친구가 아직 어려서 돈이 없다고. 백에 안되겠냐고. 그것도 쇼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집주인이 허락해주었고 말일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100/40으로 첫 집 계약을 했다. 집주인은 친구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올 수 있다며 비밀번호 대신 카드키를 주었다. 그리고 계약서에는 부모님 중 한 분 연락처를 적어달라 말했다. 고독사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해질 것 같아 그런 것 같았다. 성인이 직접 살 곳을 계약하는데 원래 부모님 번호를 적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 역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피해 의식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피해 의식으로 결론짓고 더 생각하지 않는 게 나에게 이로웠다.


당장 떠오르는 비밀번호가 없어 전애인 D의 집 비밀번호를 그대로 도어락에 입력했다. 한참동안 쓰던 그 번호를 누르고 202호 현관문을 열면 작은 주방과 화장실 문, 방으로 통하는 중문이 있었다. 중문을 열면 직사각형 모양의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낡은 옷장과 책상, 신발장, 냉장고가 있었다. 에어컨과 옷을 걸 수 있는 봉도 있었다. 남쪽으로 난 창이 두 개나 있었지만 가림막이 있어 개방감이 크진 않았다. 그 너머에는 옆 건물이 있어 애초에 개방감을 기대할 수는 없는 집이긴 했다. 다이소에서 자잘한 생필품을 사고 청소를 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필요한 것들이 없어 이제부터 채워나가야 했다. 이불도 없어 패딩을 꺼내 바닥에 깔고 누웠다. 초여름이라 온도는 괜찮았지만 오래된 패딩은 푹신하지 않아 불편했다. 더군다나 나는 덮을 것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 자는 게 편하지 않았다. 다른 겉옷은 발끝부터 목 까지 전부 덮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몸이 배기고 발가락이 휑해도 마음이 놓였다. 지금까지의 공간 중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대학동은 고시촌이라 불리는 곳이다. 고시생과 서울대생과 집값이 싼 곳을 찾아온 자취생들이 모인 동네였다. 때문에 식당, 카페, PC방, 노래방, 술집, 큰 마트, 스터디카페…… 아무튼 뭐가 많았다. 특히 ‘혼밥’을 할 수 있는 식당과 고시식당이 많았다. 어쩌다보니 대학동에 살면서 고시식당은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싼 가격에 외식을 할 수 있어 다양한 식당을 이용했었다. 부대찌개 집은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혼자서도 부대찌개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맛은 그닥인 삼천 원짜리 짜장면을 파는 곳도 있었다. 주인 부부가 연세가 있어서 가게를 일찍 닫아서 자주 가진 못했지만. 주로 카페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대학동의 카페들도 좋아했다.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었고 늦게까지 하는 곳도 몇 곳 있었다. 도림천도 있어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었다. 잘 알지 못한 채로 급하게 왔음에도 괜찮은 동네였다. 괜찮지 않은 건 당연히 교통. 신림은 강남을 가기에도, 홍대를 가기에도 편한 곳이었지만 대학동에서 가려면 대충 이십분이 추가되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신림역으로 가는 버스가 미어터질 것 같았다. 눈이 많이 내려 신림역에서 집 근처 정류장까지 사십 분이 넘게 걸렸던 적도 있다. 지금이야 신림선이 생겨서 나을 것 같다. 나는 그때 신림선이 완공될 때까지 대학동에 살지 않을거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오래 있나 봐라 내가, 하는 마음으로.


집 계약에 대해서는 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그랬다. 이 집이 계약해도 안전한 집인지 알아보는 건 어려웠고 제대로 계약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건물이 어떻느니, 소유주가 누구니, 융자가 끼어있다느니, 인터넷과 지인을 통해 알아보아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다. 겨우 보증금 백 만원이라 할 수 있지만, 나한테는 작은 돈이 아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주소가 여전히 대전이었던 주민등록증을 들고 동사무소에 갔다. 홍대에서, 성신여대에서, 충무로에서, 강남에서 살았음에도 내 거주지는 대전이었다. 병무청 신체검사도 대전에 내려가서 받아야 했고 경찰서에 갈 일이 생겼을 때도 고시원에 살고 있어 난처했던 적이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내 번호가 뜨자 앞으로 갔다. 대기시간보다 짧게 내 주소이전을 처리해주었다. 내 주민등록증 뒤편에는 새로운 주소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나는 지금껏 서울에 살았고, 이제야 서울에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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