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불쌍함을 팔아서

11 대학동 원룸

by 열원

나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청소년 지원, 청년 지원, 학교 밖 청소년 지원. 받을 수만 있다면 이것저것 받았다. 그러다 알게 된 곳이 한 청소년자립지원관이다.


자립지원관에서 나를 담당한 실무자를 파랑이라 부르겠다. 파랑은 서로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존대를 하며 쌤이라 불렀다. 파랑도 나에게 늘 님 자를 붙였고. 그래서 가끔 기관의 다른 청소년을 만날 때 그들이 실무자에게 반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어쨌든 존대와 별개로 파랑은 나를 막역하게 대해주었다. 글에서라도 편하게 불러보고 싶어 파랑쌤 대신 파랑이라 부르겠다. 처음 자립지원관에 방문했을 때, 파랑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자립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이지 같은 것을 ‘자립계획서’라는 이름으로 적기도 했다. 나는 자필로 솜사탕 같은 글을 썼다. 설탕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잔뜩 부풀린 글 말이다. 정작 뭉치면 한 주먹도 안 되는 글. 심사 후에 의료비, 생필품, 월세 지원 같은 것들을 받게 되었다. 의료비는 매달 가는 정신과에 쓰기로 해서 정신과에 연락을 했다. 내가 방문해서 진료를 받고, 후에 자립지원관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허락해주었다. 생필품 지원은 파랑과 함께 한도 내에서 결제를 하면 되는 것이어서 어려울 게 없었다. 우선 약속을 잡고, 내가 사는 대학동에서 파랑과 만난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한다. 파랑이 이따금씩 물건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계산할 때가 되면 파랑은 백 원도 남기지 말라며 남은 몇 백 원으로 무얼 살지 고민했다. 그러고 계산대 앞에 있는 껌이며 물티슈 같은 걸 보고, 껌 안 먹어요? 물티슈 필요 없어요? 하고 묻고는 했다. 나는 그런 파랑과 자립지원관에 미안함을 느꼈는데, 파랑은 당연히 내가 써야 할 돈이라 말하며 미안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가장 어려운 건 월세 지원이었다. 월 이십만 원을 지원해준다는 건 내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이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고 집주인의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받고 자립지원관과 집주인이 통화를 하는 일련의 과정은, 무섭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지원 방식이 월세의 일부를 자립지원관에서 직접 집주인에게 입금해야 하는 것이어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우선 집주인이 나를 불안정한 상태로 볼까 봐 불안했다. 스물넷까지가 청소년이라 하지만 이십 대인 내가 ‘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 도움을 받으니 이상하게 볼 것 같기도 했고. 적어도 나는 윗층에 사는 집주인이 신경쓰였다. 부끄러운 건, 나도 모르겠다. 재정적으로 힘들어서 지원을 받는 건 맞으면서도 그 사실을 남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자립지원관에서 평가회의를 가졌다. 나는 지원받을 때마다 가지고 있던 작은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런 의도가 아닌 것도 알고, 증명이 필요한 것도 알지만, 어쩔 때는 내 가난을 팔아서 지원을 받는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가난하고 불쌍한지 보여주어야 지원이 나오는. 일정 수준 가난하고 불쌍하지 않으면 지원이 나오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더 열심히 팔게 되는 것 같아요.


평가회의가 끝나고는, 자립지원관에 방문했을 때마다 그랬듯 물품을 받았다. 파랑은 마스크, 손소독제, 컵밥, 즉석요리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챙겨주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나보다 더 필요한 청소년에게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 나는 거절을 반복했다. 파랑은 원래 내 것이라며 거절을 거절했다. 미안해서,라고 했지만 적선받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한 번은 구급상자를 주겠다고 했는데 사이즈도 크고 필요 없을 것 같아 거절했었다. 파랑은 자립지원관에서 한 시간 거리인 우리 집까지 찾아와 구급상자를 전해줬다. 구급상자를 쓸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금 다쳐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부끄럽고 고마운 곳이다.






그런 자립지원관을 소개해준 곳은 다른 청소년지원센터였다. 지원센터와 약간의 관계만 지속해오다 어느 날 급하게 찾은 날이 생각난다. 전에 얘기했던 H와 헤어지고 바로 간 것이었다. 짐을 싸들고 눈물을 흘리며 애인의 집을 나오던 때에. 실무자들은 모두 나를 반겨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진정시켰다. 이러고 싶지 않아서 울었다. 이렇게 망가진 모습으로 남 앞에 나타나기가 무서웠는데, 내 인생이 망했다고 느낄 만큼 부끄러웠다. 아주 어릴 적, 한 친척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바지를 내린 적이 있다. 그때 팬티까지 같이 내려갔고 사람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엉엉 울고 있는데도 그 꼴이 우스웠는지 귀여웠는지 계속 웃기만 했다. 그때처럼 벗겨진 기분이었다. 물론 아무도 웃지 않았고 내 전부가 까발려진 것도 아니었다. 실무자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었음에도 나는 완전히 나아질 수 없었다. 아이가 놀라 계속 울며 진정되지 않는 것처럼, 한참을 그랬다.


이후에 지원센터에서 상담을 지원, 연계해주었다. 나는 상담을 통해 많이 나아질 수 있었다. 상담가 선생님은 내가 내 우울증을 멀리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상담이 끝날 즈음에는 조금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상담 날에, 지원센터에서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실무자 모두가 책 표지 안에 짧은 편지를 써주었다. 모두 기억에 남지만 이 글을 쓰며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당신을 만나서 우리도 성장했어요. 고맙고 애틋한 존재. 그대가 그 긴 팔과 다리를 쭉-쭉 펴고 편안한 한숨을 쉴 수 있는 온전한 공간이 또 찾아올 거예요. 그때까지, 앞으로도 우리가 있다는 거 잊지 말기!


자립지원관과 지원센터는 존재 자체로 나에게 온전한 공간이었다. 충분히 무너지고, 충분히 다시 빚을 수 있는 공간.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곳이 나의 온전한 공간이 아니었으면 한다. 누구한테 지원센터에 간다고 말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창업 지원이나 청년보증금대출 같은 말을 들으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되지 않는데 유독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스물이 넘어서 지원을 받아서 그랬는지, 누군가가 미숙하게 볼까 봐 그랬는지. 어쩌면 내가 미숙하다는 걸 알아서 그게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내 글에 ‘부끄럽다’라는 말이 빈번히 나오는 것에 지친다. 그럼에도 부끄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넘기기엔 하도 많이 느낀 감정이라 그렇다. 돈이 없고, 미숙하고, 촌스럽고, 불안정한 나를 인정하기 싫었다. 여전히 그 감정과 싸우고 있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부끄러워도 돈이 없으니 앞으로도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있다면 받겠지. 그때마다 내 불행을 팔아야 하기에 약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불행은 신기했다. 팔아도 팔아도 비워지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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