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학동 원룸
나는 약속을 미리 잡는 편이다. 언제 누구를 만나고, 언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언제는 무얼 하고, 그렇게 계획이 잡혀 있는 게 좋아 번개를 자주 하지 않았다. 갑자기 연락해서 지금 볼래? 하는 건 어색해서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신림에 살 때는 약속을 몰아서 잡았다. 어떤 때에는 약속이 빼곡한 반면 어떤 때에는 약속이 하나도 없었다. 대개 사람을 만나서 정신 건강을 회복하다, 조금 지쳐 잘 만나지 않았다가, 다시 외로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식이였다. 한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았던 만남 비수기 때의 일이다.
수도권에 친구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동아리 활동이나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도 있고 건너건너 알게 된 친구도 있다. 대학동에 살면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가깝게는 서울대입구, 멀게는 한 시간이 넘는 의정부나 수원까지 가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날, 친구를 번개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말했듯 갑자기 만나자고 말하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멀리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의 충동은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동네친구가 고팠다. 대전에 살았다면 있었을 동네친구가 필요했다. 약속이랄 것도 없이 야, 술이나 마실래. 할 수 있는 친구. 거창한 이유나 목적 없이도 근처서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나는 데이팅 어플을 열었다. 그리고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전신사진의 S와 매칭이 되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저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집에서 술 마실래요? 이상한 짓 아무것도 안 할거고 술만 마셔요. 인사도 없이 그렇게 보냈다. S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S와 중간지점에서 만났는데, 두 블록도 안되는 거리였다. 술을 사서 집으로 갔다. S와 술을 마시면서 공통분모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가 겹쳤고 대화는 술술 흘러갔다. 아니, 좋아하는 일본 밴드의 최애곡까지 같을 일인가. 우리는 여성 솔로 가수 중 누구를 디바라 부를 수 있는지, 발라드 가수의 계보와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 따위를 토론했다. 그런 이야기를 한참 웃으며 하고 나서, 내가 술을 마시자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물었다. S는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주량이 비슷했다. 술을 마시고 한 번도 토를 해본 적이 없다 말한 나는, 그날 S와 사이좋게 토를 했다. 자신의 만취한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아침에 도망치듯 떠난 S는 핸드폰을 놓고 갔고, 그래서 다시 돌아왔고, 한참 뒤에 숙취해소제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우리는 그 뒤로도 자주 만났다. 술을 마시고 독립영화와 연극을 봤다. 어느 날 S가 고백을 했다. 나는 직전의 연애에서 그러했듯이 고백을 어정쩡하게 밀어냈다. 나는 연약한 사람이라, 실제도로 부족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부족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라. S는 괜찮다고 했다. 정확히 무어라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이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이었다. S는 돈이 많지도 않았고, 자신도 불안정해 보였다. 그럼에도 서로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보기로 했다. 나는 S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주에 한 번은 만났다.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하지 않더라도 얼굴이라도 봤다. 거리가 가까우니 부담스럽지 않았다. 동네친구를 만들려 했는데 동네애인이 생겨버렸다. 동네에 S가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S가 말한대로 자신이 (대학동 옆인) 서울대에 다니고, 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그 날 내가 술이 고팠고, 자신이 잠들지 않은 우연에 감사했다.
사귀고 오래되지 않은 날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열이 심했고 머리가 아팠다.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은 S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자기가 오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오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간단한 짐을 챙겨 S의 집으로 갔다. S는 과제가 많아 바빴다. 이럴 거면 왜 오라고 한 거야. 그래도 이미 와버렸으니 시키는대로 S의 싱글침대에 누웠다. S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 불빛으로 과제를 하고있었다. 평소에 감기가 걸려도 이렇게 누워있을만큼은 아니었는데. 몸에 기운이 없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S는 등을 보이며 과제를 하고 있었다. 언제 눈을 떠도 그 자리에 있었다. 역시 서울대생은 엉덩이 힘이 좋구나. 다시 눈을 감고 자는데 S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죽을 사왔으니 먹으라는 것이었다. 감기인데 죽 말고 다른 거 먹어도 되지 않나, 하며 죽을 먹었다. 입맛이 도는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입으로는 잘 먹겠다고 했다. 분명 죽은 맛이 없는데, 맛있게 먹었다. 앞에서 나를 보고 있는 S를 보니 착각처럼 맛있게 느껴졌나보다. 그 집에서 사흘 정도 있었는데 그동안 S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내가 자다 깨서 한 번씩 부르면 돌아봐주었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졌다. 땀을 많이 흘려 이불이 더러워졌을 텐데. 코를 골지도 모르는데. 괜찮으려나.
나는 아플 때 간호해주는 이가 없음을 즐긴다. 스스로를 고독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느끼며 쓴맛을 즐기는, 유치한 짓거리다. 아픈 것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한 번 세게 아파 땀도 흘리고 무료하게 보내면 새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뭐랄까 변태 과정 같다. 그냥 내가 변태 같기도 하고. S가 나를 돌봐준 이후로도 간호해주는 이가 없음을 즐겼지만, 마냥 그러진 못했다. 삶의 울타리안에 나를 간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감사한 일이었다. S는 내가 정신적으로 아플 때도 나를 돌봐주었다. 편하게 웃을 수 있었고 울 수도 있었다. 나는 늘 S에게 안겨 있다고 느꼈지만, S 또한 나에게서 위로를 받고 안정을 찾았다 하니 다행이지 싶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법을 배웠다.
S는 내 원름을 좋아했다. 내가 S의 집에 가는 것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S는 내 원룸이 좋은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원룸이 더 좋아졌다. 대학동이라는 구석진 동네에 그리 넓지도 않은 원룸이고 신축도 아닌데, 그 집이 가면 갈수록 사랑스러워졌다. 대학동과 나의 202호를 사랑할 수 있었다. S는 내 심적 공간 제공자였을 뿐만 아니라, 나의 물리적 공간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