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부르고 가구도 옮기고

13 대학동 원룸

by 열원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나서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갑자기 쪽팔린 기억이 떠오르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생각날 때, 혹은 가슴속에 있는 복잡한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보통은 외마디 ‘악’이었고 어쩔 때에는 길게 ‘으아악’하기도 했다. 그러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조금은 날아가는 듯했다. 자퇴를 하고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는데 갑작스레 많아진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한 탓이었다. 어느 날은 침대에 누워 창틀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다 무엇 때문인지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고 ‘악’하고 높은 비명을 질렀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내게 달려왔다. 잘 놀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놀랐겠지만, 엄마는 유독 잘 놀라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가만히 서 있어도 혼자 보고는 놀랄 정도였으니까.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을 크게 뜨고는 내게 그러지 말라고 일렀다. 엄마가 걱정하는 걸 알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을 몰랐다. 단시간에 기억을 날리거나 감정을 분출하는 방법은 그게 유일했다. 소리를 지르는 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어서 제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방귀를 참으면 독이 되듯, 비명을 참으니 속에 가스가 차는 기분이었다. 밖에서는 누르고 있어도, 한낮에 집에서도 그러지 못하는 건 답답한 일이었다. 나는 소리를 지를 곳이 없었다.


노래 부르길 좋아한다. 혼자서 흥얼거리고 사람들 앞에서도 흥얼거리고. 내가 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만 부른 적도 종종 있었다. 어느 날 아빠가 날카로운 투로 노래 좀 그만 부르라 말했다. 한 시간이 넘게 노래를 불렀으니 이해는 된다. 입장이 반대였으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아빠도 듣기 힘드셨겠지.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때는 어른들이 참 좋아해 줬는데. 앞에 나가서 트로트를 부르고 춤을 추면 그렇게 귀여워해 줬는데. 하기야 그 나이에도 한 시간 넘게 노래를 부르면 질려했겠지.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대학동 원룸은 방음이 잘 되었다. 늦은 시간에 세탁기를 돌리거나 친구들과 떠들어도 이웃이 문을 두드리거나 신고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나도 소음은커녕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는 잠을 잘 때 벽이 있으면 벽에 꼭 붙어서 자는 편인데, 그렇게 자도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열심히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 가만히 있다가 소리를 질러도, 설거지를 하다 노래를 불러도 괜찮았다. 춤도 췄다. 노래 실력과 마찬가지로 춤 실력도 엉망이지만 보는 사람도 없으니 뭐 어떤가. 왈츠도 차차차도 잘 모르는데 막 흉내를 내며 춤을 췄다.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그걸 하루 종일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서,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언젠가 다시 그러지 못할 수 있으니까, 언제 남과 살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실컷 노래 불러야지, 하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다시 대전에 살 때로 돌아와서,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가구 배치를 바꿨다. 새로워진 방을 보면 질리지 않았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공간이 바뀌면 잠이 잘 와서 그러기도 했다. 침대를 돌리기도 하고 책상을 벽에서 떼어놓기도 하고, 옷장을 벽으로 쓰기도 하고, 길에서 멀쩡해 보이는 책장을 들고 와 새로 배치하기도 했다. 책장을 둘러보다가 혼자 끌고 와 빌라 계단을 한참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3층이었는데 혼자 낑낑대며 이쪽에서 책장을 올리고 저쪽에서 들고 했었다. 몸을 써서 그런지 머릿속의 부정적인 생각이 가라앉았고 스트레스도 풀렸다. 다만 엄마는 나의 가구 배치 변경을 못마땅해했다. 엄마는 깔끔한 편이어서 먼지를 날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가구 배치를 바꾼다는 건 생각이 많을 때라는 걸 알아서인지 나를 걱정하기도 했다. 내가 가구 배치를 하고 청소를 하면, 나는 상쾌해지고, 엄마는 불쾌해졌다. 가구 배치를 한참 하지 못했을 때 잠을 설친 날이 있었다. 내일 일찍부터 일정이 있어 조금이라도 자둬야 하는데. 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의자를 꺼내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도 편하지 않아 거기서 의자에 엎드려 잠들었다.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환경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보면 걱정하실까 봐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침대에 누울 생각이었지만 늦게 잠든 탓인지 먼저 일어난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 엄마는 책상 아래서 잠든 나를 보며 속상해했다.


고시원에 살 때는 배치할 가구도, 변경할 공간도 없었다. 애인 집에 살 때는 내가 혼자 건드리기도 불편했고. 대학동 원룸에 살게 되면서 반년마다 가구 배치를 바꿨다. 딱히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그때쯤 되면 내 방이 지루해져서 그랬다. 내가 가구 배치를 바꾸는 건 항상 밤이었는데, 아마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이라 추측된다. 처음에는 작은 원룸을 분리해서 살아보겠다고 책장과 옷장을 양쪽에 두고 그 사이에 커튼봉을 달았다. 얇은 속커튼을 달아놓으니 자는 공간이 분리되어 아늑했다. 책장 뒷면은 시트지를 붙이지 않은 합판이라 시트지를 붙여 깔끔하게 했다. 그다음 가구 배치는 책상을 방 가운데 두어, 깊은 쪽을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책상을 깊이 넣기도 하고 매트리스가 벽면과 가구에 둘러싸이도록 해서 동굴처럼 만들기도 했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가구도 낡았고, 내가 새로 산 가구도 가격을 생각했기에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동 원룸을 더 사랑하려고 열심히 가구 배치를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뭐든 쉽게 질리는 편이어서, 일 년 계약기간 동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원룸은 고시원이나 애인의 집과 달랐다. 내 마음대로 가구를 옮길 수 있는 곳.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곳. 나의 안락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 못은 박지 못해도, 가구 옮기는 것 가지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 대학동 원룸은 그런 공간이었기에 이 년 동안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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