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신림 대학동 원룸을, 꼭 이 년을 채우고 떠난다. 새로운 거주지는 왕십리다. 성동구는 아직 살아보지 못한 곳이기도 했고, 교통도 편했고, 생활 반경이 그쪽에 가깝게 있기도 했다. 역에서 먼 것이 한이 되어 걸어서 이 분이면 되는 초역세권으로 구했다. 방은 조금 작아졌지만 창이 잘 트여 있어 답답한 감은 없었다. 이사 전 날 집과 동네에 대한 기억을 톺아봤다. 전 세입자가 썼을 화장실 타일에 남은 압착 고무 자국, 집주인이 준 감 세 개, 내 실수로 조금 뜯어진 옷장 시트지, 우연히 달이 잘 보이는 각도를 찾은 창, 김밥천국 김치볶음밥 맛, 나에게 VIP라며 서비스를 잔뜩 주시던 이자카야 사장님, 메인 요리보다 같이 나오는 계란국이 더 맛있는 식당. 대학동에 사는, 진즉 헤어진 S. 어떤 것은 사소해서 기억에서 점차 사라질 테고, 어떤 것은 평생 남을지도 모를 것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서울을 모르고, 서울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또한 여전히 연약하다. 집에 대한 글을 쓰려 노트북을 열었더니, 과거의 애인들을 쓰지 않을 수 없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애인이 있어야 안정이 되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상대에게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내게 애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아무나 붙잡고 연애하는 이기적인 방법을 택하진 않지만. 애인 또한 나의 공간이 되어줌에 감사하다.
어쩌면 나는 서울에 막 올라왔을 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내 안의 상처가 아물며 단단해지는 과정을 느낀다. 완전하지 않아도 불완전에서 벗어나려는 애틋한 나를 응원하게 된다.
끝으로 대학동 원룸을 떠날 때 썼던 일기를 첨부한다.
22.06.24, 아, 그 동네는 버스가 서서 가잖아.
내가 대학동에 산다고 했을 때 들은 말이다. 대학동은 역에서 가까운 것도 아니면서 유명한 동네다. 서울에서 집값이 싸기로 유명한 동네. 정확히 2년을 살다가 이 동네를 뜬다. 누군가 어디 사냐고 물으면 쪽팔린 동네, 길고 긴 아침 출근길이 자꾸만 비참해지는 동네. 그런 동네에, 누군가를 들이기 부끄러운 집, 내가 사는 곳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집. 그곳에서 탈출한다.
재밌는 건 지금까지 서울의 거주지 중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공간은 이 집뿐이었기에, 깊은 추억을 많이 남겼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 처음 왔던 때를 기억한다. ‘24h’라는 간판을 단 할리스를 보고 기뻐했고(23시까지만 운영하는데 간판을 바꾸지 않은 거였지만),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 맛이 독특한 부대찌개 가게에 들렀고, 다이소와 마트, 생활 잡화점에 가 생필품을 샀다. 나는 이 동네에 살면서, 이따금씩 좋은 이들과 술을 마시며 한참을 깔깔댔고, 동이 틀 때쯤이 되어서야 잠들곤 했다. 때로는 혼자 무기력하거나, 마음껏 노래하고 소리 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여기서 마음껏 행복할 수도, 마음껏 우울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버스가 직각으로 서서 간다는 이 동네가 부끄럽다. 내 집이 직각 버스 구역이 아니면서도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을 우스개로 넘기지 않고 제대로 이겨냈으면 좋겠다. 좋았던 기억들로 충분히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동네였으면. 이 동네와 연관되어 있는, 잔존하는 슬픈 감정들에 지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