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성신여대 동거
동거하는 어떤 커플이 안 그러겠냐마는, 나와 H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고, 그래서 힘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자는 시간인데, H는 내 기준에서 굉장히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새벽부터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하려 강남에 갔고, 낮에는 학교 공부를, 저녁에는 운동을 했다. 그러고는 밤 아홉 시에 잠들었다. 나는 죽상을 지으며 일어나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녁에는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친구를 만났다. 나는 H의 취침 시간인 아홉 시를 넘어서 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그럼 H는 내가 씻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우리가 만난 지 오십 일이 된 날이었다. 거창할 것까지야 없지만 귀엽게라도 기념하고 싶어 작은 케이크와 편지를 준비해 집에 들어갔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들어갔고, H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어 있었다. 그냥 재워도 될 것을, 굳이 H를 깨워 케이크와 편지를 건넸다. H는 ‘어 그래그래’하는 식으로 편지를 받았다. 나는 케이크를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 서운했지만 딱히 서운할 거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운해봤자 나만 유치한 사람이 될 것 같아 그렇게 감정을 덮었다.
종종 나를 가르치려 드는 H가 싫었다. H도 자신을 자주 ‘야’라고 부르는 내 모습을 싫어했다. 우리는 마찰이 잦았다. 그 당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이었기에 되도록 참으려 했다. 홧김에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건 나니까. 두려움이 일상이 되어 스트레스가 되니, 결국 그 두려움을 스스로 제거하기로 했다. 큰 싸움 끝에 헤어지자고, 짐도 정리해서 일주일 안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H는 헤어질 생각은 전혀 없었는지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한참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더니 손 한 번만 잡아달라 말했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 그 손을 잡았고 그 뒤에 껴안으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마음은 정리되어 갔다. 여차하면 끝낸다는 생각이었다. 내게 빛이 드는 옥탑방은 중요했지만, 옥탑방을 위해 나를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내가 더 불안정해질 때가 온다면 바로 옥탑방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과 비슷한 이유로 다시 싸운 밤에 H는 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잤다. H는 여느 때처럼 영어 공부를 위해 일찍 나갔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정확히 왜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기억난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 이와 나눈 공간을 무덤덤하게 볼 수 없었고, 그곳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어느새 출근 시간은 지나있었고 나는 전처럼 일방적인 통보로 일을 그만두었다. 무책임한 내 모습에 대한 자책감이 더해져 더욱 일어나기 힘들어졌다. 나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벌떡 일어났다. 말 그대로 나를 ‘벌떡’ 일으킨 건 이 공간에서 도망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H에게 제대로 말하고 매너 있게 나가고 싶었지만 H는 다시 손을 잡아달라 부탁할 것 같았고, 나는 그 손을 잡아버릴 것 같아 도망치기로 했다.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많지도 않은 짐이어서 다 싸고 나서도 환했다. 떠나려고 보니, 갑자기 여기서 잘 먹고 잘 살 H에게 화가 났다. H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유치한 짓을 시작했다. 내 지분을 한 톨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산 샴푸도 다 물에 흘려버리고 내가 산 휴지도 버렸다. 그러면 분이 풀릴 줄 알았는데.
H와의 관계를 끝내며 내가 애인과 헤어지면 완전히 무너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별의 충격에 무뎌지지 않아서 그런지도 몰랐지만, 나는 H를 만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늘 애인과 헤어지면 무너졌다. 나는 나를 유지하려 H를 실컷 미워했다. 친구들에게 H의 욕을 하고, 얼마나 나쁘고 못된 사람인지를 말했다. H와 만나고 있을 때에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해서였건, 정신적인 안정의 공간이 필요해서였건, 그 공간의 유지를 위해 더 사랑하려 노력했었다. 헤어진 뒤에는 내 정신적인 공간의 유지를 위해 H를 미워하는 내가 우스웠다. 몸은 떨어졌으면서, 이제 사랑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H를 이용했다. H도 나를 충분히 미워했길 바란다.
그렇다고 이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상황이 급작스러웠다 뿐이지 예정된 결말이기 때문이다. H와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H는 나보다 청소를 덜하고, 일찍 잠들고, 외관을 신경 썼다. 나는 H보다 청소를 더하고, 늦게 잠들고, 외관을 신경 쓰지 않았다. 비슷한 점도 물론 있었다.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자존감이 낮은 것. 내가 그때 집을 나오지 않았어도 머지않아 헤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했다. 이 절은 내 것이 아니었으니. 정신적인 공간 또한, 그곳에서 제대로 유지될 수 없었으니. 그 뒤에도 나는 내 공간을 찾을 수 없어 계속해서 헤매야 했다.